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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Feb 28. 2024

한국이 베낀 망할(망한) 미국 프랜차이즈  1부

아직도 6, 70년대 미국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머문 대한민국 

옛말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17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계를 누군가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하면 이 속담으로 우리 프차를 표현하는 게 가장 잘 어울릴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가? 미국이 프차의 원조라던데 갸들도 이래?'


그럼 오늘은 재미난 미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역사를 풀어 보겠습니다. 


'옛날 옛날 미국에서 말이죠...'



1964년에 등장한 미국의 '미니펄'이란 치킨 프랜차이즈의 흥망성쇠는 우리나라 가맹점주(희망자 포함) 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사를 꿈꾸는 사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무척이나 큰 사건입니다. 


미니펄의 창업에는 3명이 등장합니다. 먼저 이 창업을 기획환 '존 제이 후커'(이하 후커)와 '마힐리아 잭슨'(유명 가스펠 가수, 후커가 꼬신 듯하며 그녀의 이름을 딴 치킨 프랜차이즈도 출시됩니다. ) 그리고 위 사진의 '사라 콜리 캐넌'입니다. 그녀는 당시 상당히 유명한 코메디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애칭이 '미니펄'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 사업 기획자들이 그녀의 명성을 이용한 거죠. 뭐 이런 스타 마켓팅은 우리나라에도 익숙하죠.


여하튼 이 사업을 주도한 '후커'는 KFC 프랜차이즈의 성공에 영혼을 빼앗깁니다. 자료를 조사해 보면 그가 당시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얼마나 매혹되었는지 나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일하는 동안, 심지어 잠자는 동안에도 KFC는 자동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뜻입니까?


자기는 졸라 일해서 돈을 버는데 KFC 회장은 누워서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니 환장하는 거죠~~ ^^;;


'미니펄'은 사업 초기 크게 성장합니다. 20달러에서 시작한 주가는 곧 56달러에 이르렀고 창업자 후커와 투자가들은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1969년 초, 40개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고 100개는 건설 중이고 300개는 개발 중이었습니다. 1600개까지 가맹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거품이었던 거죠. 


이들의 문제점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아이디어만 있고 외식에 대한 전문 지식과 이해가 없는 창업자의 한계

2. 가맹본부의 수익을 오로지 신규 가맹점 개설시 들어오는 초기 가맹비에만 의존.

3. 막무가내식 가맹점 개설 강행(가맹점 이익과 동반 성장 보다는 오로지 사업 확장에만 몰두)

4. 1번으로 외식 프랜차이즈의 기본 중 기본인 '레시피' 관리가 전혀 안됨(폭망 사유에 이게 가장 컸다고 하네요)


어떤가요? 위 글을 읽어보다 보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우리나라 뉴스에 등장하는 프랜차이즈들 사건 사고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이를 달리 말하면 미국의 1960년대 말 미국 프랜차이즈의 문제가 현재 우리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업계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말 환장하는 거죠~ ^^, 여하튼 미니펄은 망했습니다. 제대로 운영이 되는 직영점도 가맹점도 없었던 겁니다. 그나마 꾸역꾸역 운영하던 가맹점주들도 손실만 입었고 결국, 투자가들은 미니펄 본사에 소송을 하며 미국 프랜차이즈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사실 '미니펄 치킨' 프랜차이즈의 폭망 사건은 자료에 미국 대통령 닉슨까지 등장할 정도로 당시에는 꽤 큰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식 시장을 감시하는 기관까지 등장하고요. '미니펄'이 당시 미국 프랜차이즈 업계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이들의 성공에 고무되어 Al Hirt, Tex Ritter, Johnny Carson, Tennessee Ernie Ford 및 기타 유명인의 이름을 딴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고 하니 말이죠. 


당시 이 상황을 모 프랜차이즈 전문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난폭한 시절이었다.

여기서 비극은 이런 욕망가들의 난폭한 사업 확장에 죽어 나간 건 '가맹점주'였다는 사실이죠.


이와 유사한 대표적 사례를 하나 더 밝히면 '브로드웨이 조'라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사건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스타 마켓팅'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사업의 내실보다는 '스타 마켓팅'으로 오로지 브랜드(상표) 키우기에만 몰두하다가 스타가 사라지면서 브랜드까지 사라져야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또한 중요한 핵심은 영문도 모르고 피해를 입은 건 수많은 '가맹점주'였다는 사실입니다.


자 어떠셨나요? 오늘 첫번째로 올려 본 옛날 옛적 미국의 프랜차이즈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나 모르겠습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지금 우리나라 프차 기업들의 가장 고질적 악습인 'X무 창업'과 '강매 원부자재로 폭리 취하기'의 창시자인 미국 '치킨 딜라이트' 사건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시적 '로얄티'가 거북한 우리나라 가맹 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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