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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Feb 11. 2022

공포인가? 아니면 구원인가?

당신이 종교를 가진 이유는?

난 일명 '모태신앙'이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믿은 게 아니고 태어나 보니 카톨릭 신자였다는 거다. 그렇다 우리 집안은 모두 카톨릭 신자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외가 쪽 모두가 카톨릭 신자였고 친가는 아니었지만 열혈 포교자 어머니 덕분에 친가 모두가 카톨릭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 친할머니는 개종 전까지만 해도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속' 신앙자였다. 사실 그 시절에는 나이 든 노인 대부분이 무속 신앙을 깊이만 다를 뿐 다들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때 되면 '점'보는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여하튼, 그러다 보니 어릴 적 '굿'이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 무당이 굿하는 소리를 아직도 외울 정도다. 가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울 마눌님을 놀려 줄 심상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 아주 기겁을 한다.


"정성이 부족하니 호박떡이 살았구나, 돼지머리 안 놨더니 귀신이 붙었구나~ 어허~ "

가끔 누군가 내게 '카톨릭 신자입니까?'라고 물으면 '냉담자'라고 한다. 이게 뭔 말인고 하면, 종교에 발을 담긴 했는데, 종교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뜻 한다. 그런데, 이건 좀 솔직하지 않은 이야기다. 냉담자가 아니라 지금은 거의 '불가지론'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감하게 '난 신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건 마음속 심연에 자리 잡은 '공포'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주입받은 '신을 부정하면 벌을 받는다'라는 그 '공포' 말이다.




거장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사일런스'는 17세기 일본의 천주교 탄압배경이며 이 영화는 종교의 '믿음'이란 무엇인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선교를 위해 일본에 온 포르투갈 신부를 붙잡은 다이묘(영주)는 그 신부에게 십자가 위에 묶인 채 고문으로 신음하는 농노들을 - 그들은 그 신부에 의해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 - 보여주며 이렇게 묻는다.


"저들이 저런 모진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는 이유는 당신의 그 '신'을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서 죽으면 이 척박한 세상에서 벗어나 천국에 간다는 그 '구원'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다이묘의 이 말에 그 신부는 큰 혼란에 빠진다. 사실 신부는 선교를 하면서 노동과 착취에 지친 농노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그리고 자신이 '신' 그 자체보다 '천국 행'이라는 내세의 구원을 위해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솔직히 난 이 영화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고 불교적 표현으로는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 뒤 가끔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종교를 가졌던  이유 또는 지금도 종교의 그늘 아래 있는 이유는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구원' 때문일까?라고 말이다. 하긴 엎어치나 메치나 같은 소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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