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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Feb 28. 2023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로이와 ChatGPT


“나는 너희 인간들이 결코 믿지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성운 언저리에서 불타 침몰하던 전함, 탄호이저 기지의 암흑 속에 번뜩이던 섬광. 그 모든 것이 곧,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이 아름다운 문장은 영화 '블래이드 런너'의 대사다. 이 대사는 탄생 배경도 흥미롭다. 원래 대사는 '죽을 시간이야'라는 단문이었다고 한다. 이 건조한 대사를 리플리컨트(복제 인간) 역할을 한 배우 룻거 하우어가 수정했고 감독 리들리 스콧은 수정된 대사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F 팬이지만 이 영화는 내게도 제법 지루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게도 이 대사 만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빗속에서 처연한 모습으로 읊조리는 룻거 하우어의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인조인간이든 복제인간이든 이들은 인간이 만든 도구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들을 의미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아무리 겉모습이 같아도 우리 인간들의 창의성과 감성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거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피조물이 이토록 아름다운 표현을 한다면, 그들은 인간과 다른 바가 없는 것일까?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는 걸까?


요즘 ChatGPT가 난리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쓴단다. 글의 논리는 물론 감성이 인간 못지않다고 한다. 문득 난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로이'가 떠올랐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던 '로이'


"그 모든 것이 곧,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이 문장은 배우 룻거 하우어가 만들었지만, 조만간 아니 어쩌면 현재 이 순간, 우리의 창조물이 우리보다 더 감성적인 창작물을 만드는 그 역사적 시점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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