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색을 입다.
두 달전, 아파트 게시판에 외벽을 새롭게 도색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핸드폰으로 페인트 색상 설문조사 메세지가 왔고, 각 색상으로 도색했을 때의 아파트 모습이 엘리베이터에 붙었다. 4가지 시안 중 가장 근사하게 보이는 색상을 선택하여 투표를 했다. 내가 투표한 색상이 선정되었다.
아파트 벽면의 균열이 하얗게 메워졌다. 곧 아파트가 색을 입기 시작했다. 동 대포의 공약대로 아파트 외벽의 LH 글자가 지워졌다. LH가 지워지면 사람들이 민간에서 지은 아파트라고 생각하고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까? 수 많은 페인트 통이 아파트 단지 공터에 놓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커튼을 치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창문 너머로 안전모를 쓴 페이트공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명을 로프로 연결한 그들의 안전을 반사적으로로 기원했다.
아파트 외벽이 투표결과에 따라 색을 입었다.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저층 외벽은 대리석이인데 우리 아파트는 그렇지 않아서일까? 내가 상상했던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본 우리 아파트는 색을 입기 전보다 나아보이지 않았다. 주색상이 회색빛이라 도시 속의 공장 같았다. 페인트 칠을 위해 몇 억이 들었을텐데. 아쉬웠다. 내가 집 주인이었다면 더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인근의 아파트 단지들도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칠을 이미 했거나 진행 중이다. 최근 1,2년 사이 아파트 가격은 몇 배가 뛰었다. 스무번 넘게 부동산대책이 나왔지만 집값은 진정되지 않았다. 왜일까? 인간의 부에 대한 욕망을 읽지 못한 정책 때문이었을까?
요즘에 한달어스란 실천지원 커뮤니티의 '다지인 유치원'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은 '색의 톤과 감성 이해하기'란 제목의 가이드를 읽고 실습 및 소감을 글로 쓰는 미션이 주어졌다. 가이드에 의하면 우리 아파트가 새로 입은 색상은 '라이트 그레이시'다. 저층의 오렌지 빛 벽돌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 칠한 색들은 배색 이미지 스케일에 의하면 정적이고 딱딱한 색상인데 반해 저층의 벽돌색은 동적이고 부드럽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선택된 시안을 다시 살펴보니 아파트 정면 3D 저층 부분이 그림자가 져서 정적이고 딱딱한 색으로 보였다. 옆면의 3D는 그림자가 지지 않아 위의 색으로 보였다. 결국 나는 실제와는 다른 그림자가 진 정면 3D 도면의 컬러 이미지 스케일을 예상한 거였다.
내년에 아파트 전세 재계약을 할 때, 아파트 도색이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것보다는 정치, 경제의 흐름에 따라 전세가격이 달라질 것이다. 이미 색을 입은 아파트. 사는 동안 사랑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아파트 색상과는 상관없이 내게 이곳은 사생활을 지켜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Shelter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