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몇이냐니요,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요.
지난 10월, 중국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열 살 때부터 지진부진 이어온 영어가 지난하기도 했고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데 누굴 위해 맹세했던 걸까요’라는 중국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중국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뽕이 차오르기도 한 탓이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하는 일이 없었던 나는 빈약한 통장 잔액을 헤아리며 예전에 알아본 학원 중 나쁜 후기가 없고 여성 강사가 많은 학원을 골라 기초반을 등록했다.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나는 나와 나의 친구들이 구시대적 유물로 취급하는 불쾌한 관습이 여전히 ‘스몰 토크’로 이용되는 거에 적잖이 당황했다. 몇 살인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뿐 아니라 가족이 몇 명이고 구성원은 누구인지 등이 그날의 주제에 따라 훅 밝혀야 했다.
你家有几口人?
네 가족은 몇 명이야?
我家有4口人。有爸爸,妈妈,妹妹,和我。
우리 가족은 네 명이야. 아빠,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나.
나는 잠깐 망설인 후 흔히 생각하는 ‘정상 가족’에 맞춰 대답했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고민하지 않고 엄마와 동생이라고 했다. 아빠는? 대뜸 가족 구성원을 물어볼 정도로 말주변이 부족한 사람은 대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정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아빠는? 돌아가셨어? 어쩌다? 난 그들의 호기심에 맞춰 적당히 대꾸했다. 보통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상급자였고, 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일주일에 세 번 보는 학원에서 그 구구절절한 서사를 반복하거나 무언가를 잘못 건드린 것처럼 ‘아차’하는 시선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평범한’ 정상 가족을 꾸며냈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그 대답을 ‘편견 없이’ 넘길 수는 있을까? 상상력 없이 내 나이를 묻고, ‘그럼 학생이겠네’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마치 [대학 다니겠네? 아니요. 아, 일하나 보네. 아닌데요.] 이후의 적막과도 같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딱 하나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으로 설명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국민연금공단 직원이라면 모를까.
3개월간 익힌 단어들을 그러모아 자기소개를 작성했다. 유인물에는 출생지와 출생연도, 나이, 출신 대학과 졸업 여부, 결혼을 했는지 따위가 나온 후 취미가 무엇인지 가본 나라와 가보고 싶은 나라 따위를 적을 수 있게 비워두었다.
나는 출생지와 나이를 우물우물 읽은 후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며 중국과 일본, 영국 등을 가보았다고 편하게 얘기했다. 말하기 싫은 부분은 최대한 어물쩍 넘겼지만 딱히 지적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이나 직업 따위가 중요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명확한 신분이 없으면, 나이가 나와 같지 않으면 파츠가 맞아 나누었던 대화는 없는 셈 치고 서열을 매겨야 하나? 서로 존댓말을 쓰며 공유했던 이슈들을 밀어두고 ‘어리니까 반말할게’라는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굳이?
새로 들어간 발레 수업에서도 ‘학생이시죠’, ‘어려 보이셔서’라는 말을 연달아 들었다. 아마 그들이 짐작하는 내 나이와 학생이라는 신분은 높은 확률로는 정답인 짝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십 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회사를 그만두어서인지, 진로를 탐색하고 있어서인지, 건강 때문인지, 그냥인지- 하여간 여러 이유로 ‘나는 누구다’라고 특정할 수 없거나 특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내가 확실한 직업이 있거나 말거나 굳이 그 질문을 듣고 싶지는 않고.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뱉어내는 ‘가벼운’ 화제가 싫다. 가족, 나를 평가하는 수치들 따위. 내가 신경 쓰지 않거나 과민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부분을 쉽게 여기는 태도가 싫다.
외국어로 자기소개를 할 때 네 줄 이상은 말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네 줄을 내가 좋아하는 활동과, 내가 가고 싶은 나라와, 내 꿈과 내가 아끼는 것으로 채울 거다. 그게 나에게도, 나를 알아갈 너에게도 중요한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