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단어를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이슬아의 글은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글을 이렇게까지 잘 쓸 일인가? 언어화되기 전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흐트러지지 않게, 자신이 잘 아는 말들로만 엮은 글을 읽으면 내가 쓴 것들이 부끄러워진다.
자신이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세심함. 아는 만큼 얘기한다는 건 쉽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어렵다. 나는 그러면 안 돼, 하면서도 충분히 곱씹지 않은 단어, 그럴 듯해 보이는 어휘를 사용한 뒤 후회한다. 이거 뭔 생각으로 쓴 거야? 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인터뷰에도 그런 태도가 드러난다. 인터뷰이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질문들. 섣불리 판단하고 멋대로 해석하지 않는. 그런 그의 글은 마치 잔잔하게 철썩이는 파도 같다. 마음이 소란스럽고 산만하면 그가 만든 책을 펼친다. 그래서 글에서 이슬아가 ‘정혜윤 책장’이 따로 있다는 게 좀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무엇을 접속하느냐보다 무엇을 차단하느냐가 더 중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모든 게 과잉된 세상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워 담는 나에겐 뜨끔한 말이었다.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가서 봐도 안 봐도 그만인 것, 시간이 쌓인 후에 접근해야 할 것, 볼 필요가 없는 것에 무작위로 휩싸이는 요즘을 떠올리면 특히 그렇다.
즉각적으로 컨텐츠를 접하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감각이 왜 이렇게 피곤한지, 무료하고 초조해서 관성적으로 SNS에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무료하고 불안한데 왜 피곤하기까지 한지 확인 사살당하는 기분이었다.
잠시 ‘셔터를 내리는’ 행위는 현대인에게 꼭, 꼭? 가져야 할 기술 아닐까. 어떤 상황이, 어떤 사람이 24시간 내내 나의 일상에 침투하지 못하게. 조용하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귀중해진다.
이슬아의 글을 읽을 때면 잠시는 그 고요함에 빠져든다. 반듯하게 짜인 문장 속으로, 촘촘하고 조심스러운 서술에 집중하고 만다. 그러고 나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럴 수 없겠지만 이슬아의 문장처럼, 각각의 단어가 모두 제자리를 찾은 듯한 편안한 글을, 차분하고 밀도 높은 글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공들인 문장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