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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Jan 16. 2023

10년 전 좋아하던 책을 읽었다

어느새 나는 주인공들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새해.

무언가를 다짐하거나 마음을 가다듬기 좋은 시기다.

안 하던 짓을 하기에도 오랫동안 잊던 일을 재개하기에도 마뜩한 날.


나는 오랜만에 <아는 사람 이야기>를 펼쳤다.     




<아는 사람 이야기는> 2012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해 2013년도에 종이책으로 출간됐다. 스물다섯의 여자 셋의 연애담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이야기인데, 아기자기한 그림체에 꽂혀 연재 당시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가장 처음에 나오는 ‘미라’.


이유는 단순했다.

고등학교에서 바로 회사원으로 넘어간 사람이라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더더욱 ‘대학 비진학자’라는 개념이 생소한 시기였다. 당연히 미디어에선 대학 비진학 청년을 다루지 않았고, 설령 다룬다 한들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한심한’ 경우 정도로 취급된다.


하지만 미라는 그러지 않았다.


경리부 에이스고, 어떤 사정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일을 잘하고 우연히 만난 연하 남자에게 완전히 빠졌으며 살짝 뾰족한 여자.


그런 미라가 좋았다.


첫 만남부터 잘못 얽힌 연애담이 재밌었고, 겨우 용기를 쥐어짜 낸 모습이 벅차올랐다.

고백하자면 읽던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한 몇 가지 부분도 있었으나…… 어쨌든 나는 오랫동안 그 이야기 속에서 미라를 가장 응원해 왔다.     


올해, 간만에 <아는 사람 이야기>를 다시 펼쳤다.


2013년이란 숫자가 아득했다. 지금은 2023년이니까.


벌써 10년이나 지났구나. 미쳤어.


내가 아는 이야기가 10년이나 지나버린 거다. 읽을 때마다 ‘언니’라는 감상이 들었던 주인공들도 이젠 언니가 아니었다.


10년 전과 감상이 같다면 오히려 신기할 텐데, 감상이 바뀌어서 조금 놀랐다.


나는 주인공들보다 나이가 많다.

작품에서 다루는 희로애락을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2013년도엔 아무렇지 않게 쓰였던 농담이나 장치가 살짝 불편해졌다.

몰입하는 인물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미라가 아니니까.


성실한 회사원이 아니라 성실한 작가고, 급여로 환산하면 아르바이트라도 뛰는 게 더 가성비 넘칠 일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꿈을 이뤘지만 이따금 열패감을 느끼는 선오에게,

빈둥거리며 세월을 낭비하고 있다고 빈축을 사는 여름에게 깊이 이입하는 순간 조금 놀랐다.


이입 자체가 아니라 미라의 에피소드를 미라의 에피소드로 가볍게 넘겨버린다는 것에.

미라와 평화의 연애담은 여전히 귀엽고 아기자기했지만 나는 선오의 말 몇 마디를 더 오래 바라봤다는 점이.     


나는 달라졌구나.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그 점이 실망스럽거나 씁쓸하진 않다. 다만 묘할 뿐.

한 번도 시켜본 적 없는 카페의 메뉴 하나가 빠지면 이런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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