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4년 11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 게재 글입니다.
제목: 소란했던 시절에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넌 기억하고 있는지
모두 잊은 듯 지내는지
비 내리는 그 날이면
널 떠올리곤 해
(중략)
그 소란했던 시절에
그대라는 이름
- 빌리 어코스티 <소란했던 시절에> 가사
‘힘들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날. H랑 연락해서 만나러 감. 운천동. 대화. 폭우. 우비. 가까스로 집.’이라고 나의 수첩 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칸에 적혀 있다. 이 짧은 메모에서 우리가 그날 함께 나눈 시간이 물씬 묻어난다.
너는 2016년에 C여고 2학년이었고 신문반 활동을 했다. 나는 그 신문반 지도교사였다. 2017년에 너는 고3이 되었고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어떤 식으로든 우린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여름방학 중이었던 7월 28일에 내가 너를 만나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꾸무럭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네가 전화로 가르쳐 준 길을 헤매며 빗속에서 자전거를 몰았고, 몇 번의 전화통화와 몇 번의 버벅댐 끝에 마침내 너를 만났다. 우린 당시 네가 살던 빌라 건너편 카페에 마주앉았다. 그 시기 너는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고 나는 그런 네 이야기가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너는 이야기했고 나는 들었다. 너의 곤란한 상황에 마음이 많이 쓰이면서도, 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그 시간 자체는 참 달았다.
너랑 이야기를 마치고 카페 앞에서 인사를 나눈 뒤 곧장 편의점에 들러 우비를 사 입었던 것 같다. 아닌가. 우비를 그보다 더 전에 샀던가. 암튼 비닐 우비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만큼 빗줄기는 거세어졌다. 세찬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물에 푹 잠겼다 나온 듯이 쫄딱 젖어 있었다. 너도 나도 가난했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했다. ‘그 소란했던 시절’의 어느 순간을 우린 함께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린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제 네가 다녀갔다.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는 너는, 나의 전시회에 와 나를 만나려고 아침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너의 남자친구도 함께 왔다. 너는 직접 만든 모루 꽃다발과 손글씨 편지를 내게 건넸다.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 얼른 그 편지를 꺼내 읽었다. ‘선생님은 처음으로 저를 있는 그대로 봐 주신 어른이었어요.’라는 문장은 왜 사람을 울리는가.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일 것이다.
어제 전시장에서 나와 중국집에서 볶음밥과 짬뽕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2017년 7월 28일 그 비 쏟아지던 날 너와 내가 어느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를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닳아 옅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 시각 우리가 함께 있었고, 조금 추웠고, 같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사실은 잊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도 나는 이번 전시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너를 생각할 것이다. 가장 먼 곳에서 나를 찾아와 준 사람.
2017년의 너와 나가 각자의 삶에서 소란했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처럼 2024년의 너와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소란한 한 시절을 건너고 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린 틈을 내어 서로를 만나고 이 틈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의 힘으로 우리는 이 시절을 무사히 건널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렇게 읊조리겠지. ‘그 소란했던 시절에 그대라는 이름.’
그림_박현경, <‘천사’ 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