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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Jan 22. 2024

뛰어넘다(franchir)

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4년 1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제목: 뛰어넘다(franchir) / 글쓴이: 박현경(화가)

1.

     그림을 그린다는 건 ‘뛰어넘는’ 행위이다. 그리는 이와 대상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고’, 3차원의 물체를 2차원의 화면에 표현해 내는 어려움을 ‘뛰어넘고’, 상상력의 부족을 ‘뛰어넘고’,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그리려 하는 관성을 ‘뛰어넘고’, 완성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혹은 완성해도 쓰레기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뛰어넘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는다’.

     생각하면 나는 매일 새벽, 그리고 주말마다, 방바닥이나 작업 책상에 웅크린 채로 그렇게 뛰어넘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고 있었던 것이다.

2.

     나의 연작 ‘네가 보고 싶어서’ 중 58번째 작품에는 이런 문장이 부제(副題)처럼 달려 있다.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어, 마침내 널 만날 거야.’

     자유롭게 ‘너’를 찾아다니기 위해 날개와 꼬리지느러미를 모두 지닌 주인공. ‘너’를 찾아 ‘너’와 소통하기 위해 손가락 끝 앞뒤마다, 눈물방울마다 눈이 달려 있다. 손가락 개수와 눈물방울 개수는 무한대를 의미하는 여덟이니, 존재 자체가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게다가 머리 위에 꽃송이가 피어났고 그 꽃에 눈[目]이 돋았으니, 동물과 식물의 경계를 ‘뛰어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네가 보고 싶어서’라는 제목은 ‘너’라는 특정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진정한 소통을 향한 열망일 수도 있고, 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목마름일 수도 있고,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등의 사회적 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잃으신 분들의 애타는 마음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석해도 변하지 않는 건, 누군가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뛰어넘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3.

     내가 무극에서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무렵, 레아 호뱅(Léa Robin)은 파리에서 이렇게 썼다.

     ‘상상력이란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을 넘어서 창작하는 능력이다. ‘뛰어넘다(franchir)’는 서로 다른 세계와 정체성을 지닌 다섯 작가의 전시이다. 우리는 공동의 시간과 움직임을 중심으로 모이기를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뛰어넘는다는 것은 꿈꾸는 일이며, 충동을 따르는 일이고, 변화를 향해 도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뛰어넘는 행위 속에서는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내밀한 이야기가 짜여진다.’

4.

     2023년 2월, 프랑스 파리 벨빌(Belleville)의 갤러리 AAB에서 ‘삶이 내게 속삭여 준 것(Ce que la vie m’a chuchoté)’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했다. 당시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접한 판화가 크리스틴 멜러(Kristin Meller)가 전시회에 찾아와 우린 처음 만났고, 전시장에 나란히 앉아 차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서로의 창작 활동에 대한 흥미를 공유했다. 나의 경우, 크리스틴의 작품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꼭 판화를 배워 판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전시를 순조로이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다음번에는 파리에 있는 작가들 몇몇과 함께 단체전을 해 보고 싶다는, 다양성과 소통이 살아 있는 전시를 제안해 성사시키고 나 역시 그 전시에 참여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세 명의 아티스트에게 인스타 DM으로 제안을 했는데, 두 명은 아쉽게도 함께하기 어렵다고 했고, 크리스틴은 단번에 오케이했다.

     그렇게 ‘우리 함께 전시를 만들어 보자.’까지 이야기가 된 지 약 석 달이 지났을 때, 크리스틴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 레아 호뱅, 발레리(Valérie), 하울(Raùl)을 소개하며 다섯 명이서 함께 전시회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 왔다. 처음엔 막연했던 우리의 전시 계획은 크리스틴이 이렇게 서로를 연결해 준 덕분에 구체화되었다.

     이후 온라인 채팅으로 전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가 제안한 주제들 중 ‘뛰어넘다(franchir)’가 우리 전시의 주제로 채택되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문화적 경계, 물리적 한계, 그리고 금기 등등을 ‘뛰어넘는’ 행위이고, 또한 단체전이란 거기에 참여하는 각각의 작가들이 각자의 예술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를 만나는 일이라는 나의 취지에 다들 공감해 주었다.

5.

     전시 ‘뛰어넘다(franchir)’는 2024년 2월 1일부터 11일까지 파리 벨빌의 AAB 갤러리에서 열린다. 리셉션은 2월 2일 오후 6시부터다.

6.

     또 한 번의 파리행(行)을 목전에 두고 나는, 그간 ‘뛰어넘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는’ 행위를 통해 창작한 나의 작품들과 함께 또 한 번 크게 ‘뛰어넘을’ 준비를 한다. 국경을 ‘뛰어넘고’, 나의 세계를 ‘뛰어넘고’,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어’ 마침내 만날 것이다, 지구 저편의 모든 ‘너’를.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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