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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Apr 22. 2024

쥐어짜는 사회

현경이랑 세상 읽기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4년 4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목: 쥐어짜는 사회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1. OOO: 저희 입장에서는 사실은 편의성도 좋지만 안정성도 같이 고려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에요. 사고 나면 사실 학교만 힘든 것이 아니라 공교육 시스템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부분도 저희한테는 굉장히 중요한데…….

박현경: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고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는데, 저는 한 가지 좀 염두에 두시고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점이, 아까  OOO 연구사님께서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안정성을 지켜야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현장에 오래 있어 왔던 사람으로서 제가 체감하기로는, 현재의 안정성은 교사 개개인의 희생, 쥐어짬을 통해 유지가 되고 있어요.


     얼마 전 전교조와 교육부의 교섭 과정에서 있었던 이 대화를 복기하며 또 다시 분노가 치민다. 자기도 한때는 교사였으면서, 현장을 안 겪어 본 것도 아니면서, 삼십 년간 현장 교사들에게 극한의 부담과 긴장을 안겨 온 업무를 이제는 좀 개선하라는 요구 앞에서 뻔뻔하게 ‘안정성’ 운운하는 그의 그 지극히 ‘안정적’이고 견고한 사고방식은 참으로 ‘안정적’으로 절망적이다.

     그런데 저 ‘정권의 하수인’, ‘뼛속까지 관료’ 앞에서 나는 또 뭘 저렇게 예의 바르게 말을 했던가. 이렇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니 저들이 교사들을 물렁하게 본다고, 평소에 내 친절하고 예의 바른 동료들을 답답해하던 나였다. 그런 나부터가 훨씬 덜 친절하고 덜 예의 발라져야 하겠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연습이라도 해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더 이상 교사의 편이 아닌, 현장을 떠나 책상머리에 처박혀 권력의 수족이 돼 버린, 그러니까 이제 더는 우리의 동료도 뭣도 아닌 자에게 나는 뭘 저렇게까지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고’,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어야 했을까.

     그렇게 친절하게 밑밥 깔 필요 없이 바로 치고 들어가 훨씬 더 힘주어 말했어야 한다.

     ‘당신이 말하는 안정성은 교사의 희생과 쥐어짬을 통해 유지되는 안정성이다. 그 안정성이란 것을 위해 교사들이 민원과 소송에 시달리고 신경정신과에 드나들고 있다. 그런 대가를 치러 가며 유지되는 제도는 잘못됐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아닌가!’

     위에 밝힌 발언들을 포함하여 그날 오갔던 그 수많은 말, 말, 말들을 곱씹으며 내가 분노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세상에는 어떤 주웅요오한 일을 위해서는 사람을 쥐어짜도 된다고 믿는 악당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그런 악당들이 주물럭거리는 정책이나 계획에 의해 이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는 점.


2.

     어제는 많이 울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날들 중 하나로 기억될 듯하다. 슬픈 일은 없었다. 다만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희생과 헌신과 노오력,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어떤 일을 하다가 깨달았다. 아하, 내가 지금 쥐어짜이고 있는 중이구나. 쥐어짬이란 바로 이런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로구나.

     ‘그까짓 것’이라고 쉽게 내팽개칠 수 없는 어떤 주웅요오하고 소중한 가치를 명분으로 하여 쥐어짬은 이루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아니 뭘 이렇게까지 쥐어짜여야 됩니까?’라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이기적인 놈인 것 같아 보이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꺼이 (또는 나처럼 울면서) 쥐어짬을 당해 준다. 많은 일이 그렇게 수십 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그 쥐어짬을 정당화하며 ‘라떼’ 이야기 하기를 즐기는 자들이 있는데, 그런 자들을 가리켜 ‘꼰대’라 한다.


3.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하고,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위해서라도,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위해서라도,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구성원을 쥐어짠다면 그런 제도는 혹은 그런 일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이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개고생시켜도 된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4.

     일련의 깊은 빡침 속에서 얻은 몇 가지 교훈을 되새기며 이 글을 마친다.

     - 꼰대들에게는 덜 친절하고 덜 예의 바르게 대할 것. 필요하다면 연습할 것.

     - ‘쥐어짜는 사회’에 줄기차게 저항할 것. 이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 적어도 내가 추진하는 일들 속에서는 그 누구도 쥐어짬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할 것. 학생이든 동료든 내 자신이든 그 누구든.


그림_박현경, 천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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