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4년 5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제목: 눈물 버튼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1.
이상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내 안에 잘못 눌린 버튼이라도 있나? 아니면 무슨 호르몬의 영향인가?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온다. 눈치 없이 솟는 울음을 삼키느라 목구멍이 아프고 몸에 힘이 들어간다.
어제는 거의 종일 그림을 그렸다. 음악을 들으며 고양이들이랑 장난도 쳐 가며 슥슥삭삭 색연필 선을 긋고 또 그었다. 그렇게 일고여덟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이렇게 평온한 토요일을 보내는데 왜 감정은 이토록 요동을 치는 건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가 다시 괜찮아졌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눈물이 나는 건 대개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다. 이를테면 직장 일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다 ‘고등학교 때도 자퇴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다녔는데, 그렇게 다니기 싫은 학교를 이제껏 다녔으면 됐지 아직도 더 다녀야 하나?’ 하는 떼쓰는 마음으로 변해 찔끔댄다. 때로는 전날 밤 넷플릭스로 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몇몇 대사가 난데없이 떠올라 한없이 슬퍼지기도 한다. 남편한테 들었던 남편의 어린 시절 어느 한 대목이 너무나 서럽게 느껴져서 울고,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내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울고, 사람 사는 게 다 불쌍하고 애잔해서 운다.
내가 울면 고양이들, 왕순이 봉순이가 나한테 와서 자꾸 몸을 비벼 댄다. 뭔가 심상치가 않다는 걸 느끼는 것 같다.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계속 색연필 선을 긋고, 색을 선택하고, 또 색연필 선을 긋고, 조금 기분이 맑아지는 듯했다가, 또 다른 슬픈 생각에 사로잡혀 또 눈물을 흘린다.
집에서 그림 그릴 때는 그나마 순한 맛인 거다. 학교에서 일하다가 울고 싶어지는 건 참 별로다. 뭔가 억울한 일이 있어 꺼이꺼이 우는 아이를 보면 나도 덩달아 서러워서 꼭 껴안고 울고 싶다. 수업을 하다 문득, 내 말을 너무 잘 듣는 순하디순한 중1 학생들이 안쓰러워 울고 싶고, 그 중에서도 엄마가 없는 아이를 보면 우리 남편 생각이 나서 통곡을 하고 싶다. 학생들 앞에서 울 수는 없으니 울음을 꾹 삼키는데, 울음이 꽤 덩어리가 큰지 목구멍이 아프다. 억지로 밀어 넣었던 눈물은 혼자 있을 때 나온다. 컴퓨터 자판으로 타닥타닥, 기안문을 쓰다 말고 눈물을 흘린다. 때늦은 눈물이라 이미 이유는 까먹었고, 왜 슬픈지 모르겠는데 그냥 너무 슬퍼서 운다.
2.
울고 싶다는 건 평정심이 깨졌다는 뜻이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슬프지도 않고 서럽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애통하지도 않다면, 눈물을 참거나 흘리는 데 드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면, 그래서 언제나 쾌적한 기분 상태로 쾌적하게 킵 고잉 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텐데……. 지금보다 훨씬 더 냉철하고 치밀하게 잘 싸울 수 있을 텐데……. 이 생각을 하느라 또 평정심을 잃고 나는 지금 눈물을 흘린다.
3.
고장 난 눈물 버튼이 주말 동안 고쳐지기를 바라며 금요일 오후를 맞았었다. 주말 동안 그림을 실컷 그리고, 맛있는 것을 챙겨 먹고,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고, 잠을 푹 자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평화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인 지금 이 글을 쓰며 또 울고 있고 머리가 아픈 걸 보면 이 눈물 버튼이 고쳐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려나 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울면서 또 때로는 참으면서 슬픈 가슴을 안고서 싸워 나가야 할 것 같다.
4.
나의 약점을 전시하기라도 하듯 이 글에 드러내 쓰는 이유는, 우선은 내일이 원고 마감 날인데 요즘 계속 슬픈 마음과 싸우느라 피로해진 뇌에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혹여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약점을 보고 자신의 약점에 대해 어떤 위로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명분 때문이다.
일주일쯤 전이었나? 그날도 울다 잠이 들었었는데 꿈속에서 내가 이런 혼잣말을 했다. ‘아무리 힘든 때라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다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될 거야.’ 깨어서도 그 말이 잊히지 않았다. 훗날 되돌아보면 지금의 이 이상한 시기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려나? 날개가 돋느라 아픈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림_박현경, 천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