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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잎 Nov 22. 2024

<공연> 2024 게자안다 콩쿠르 위너 콘서트

일리야 슈무클러의 잊을 수 없는 선물

올해 1월에 봤던 영화 <크레센도>는 나에게 음악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피아노와 콩쿠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2022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과정을 담은 이 영화를 통해 콩쿠르라는 무대가 가진 열정과 긴장감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K-클래식의 대표주자 임윤찬의 역사적인 우승 장면을 생생하게 담았고 다양한 피아니스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멋진 철학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참가자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일리야 슈무클러였다. 결국 콩쿠르의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의 진솔한 인터뷰는 음악에 대한 깊은 헌신과 열정을 느끼게 했다.


시간이 지나 그의 얼굴과 이름이 잊힐 즈음, 문화초대에서 그의 이름을 다시 보았을 때의 반가움이란. 과거 영화 속 그와 다시 연결된 느낌이 들었고, 그의 연주회를 직접 보러 가기로 했다.

이번 연주회는 일리야 슈무클러의 국내 첫 단독 공연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무대는 한층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는 올해 '2024 게자 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5개의 특별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그런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에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는 더욱 직관적으로 연주를 느끼려 노력했다. 프로그램에 적힌 곡의 해설을 읽으며 곡에 담긴 맥락을 이해하려 애썼고, 음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들으며 음악 속 감정에 동화되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곡은 프란츠 리스트의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S.173’ 중 7번 장송곡이었다. 이 곡은 단순히 슬픔을 노래하는 음악이 아니었다. 고요한 장송의 선율이 시작되면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점점 더 심오한 차원으로 나를 이끌었다. 서서히 흐르는 저음부의 울림은 마치 무언가를 묵묵히 견뎌온 시간의 무게를 품은 듯했고, 고음부의 선율은 그 무게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희망의 여운을 담고 있었다.


특히, 중반부의 깊고 장엄한 화음이 터져 나올 때, 나는 음악이 단순히 청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의 연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리스트가 곡에 담아낸 장송의 고독함은 단순히 애도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끝에서 찾아오는 평화를 묵상하게 만들었다.

슈무클러의 연주는 그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전했다. 그의 섬세한 터치와 내면을 담아내는 듯한 해석은 곡의 울림을 배가시켰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저음부의 잔향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던 순간, 나는 마치 무언가 더 큰 존재와 맞닿은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음악이 가진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차가운 겨울밤, 그의 음악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 잔잔한 위로와 강렬한 울림을 동시에 남겼다. 공연장을 나설 때 느껴진 초겨울의 찬 바람은 잠시 스쳐갔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따뜻했다.

특히 연주가 끝난 뒤 열린 사인회는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일리야 슈무클러에게 직접 브로슈어를 건넸고, 그가 사인을 해주며 건넨 미소는 음악만큼이나 따뜻했다. 그 순간, 한 음악가의 열정과 노력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감동이 밀려왔다.


그날의 연주회는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되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선율 속에서 느낀 깊은 묵상과, 슈무클러의 연주가 전해준 울림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 것이다. 그의 앞날을 응원하며, 그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전하길 바란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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