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 돋보기
‘출구’는 밖에 있는 것인가 안에 있는 것인가. 안도 밖도 아닌 그 중간이다. 그 위치만 보면 ‘입구’와도 같다. 때문에 안과 밖 사이에 있는 ‘문’을 출입구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문은 같으니까. 그렇다면 출구와 입구로 나누어 말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지향성’에 있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할 때는 ‘출구’가 되고, 반대로 들어오려 한다면 ‘입구’가 된다. 영화 <Exit Strategy>에서 말하려는 것도 이와 같다. 어떤 문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출구 전략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면 된다.
과학자인 셰인은 4년 만에 형 매트를 만난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셰인은 신기하게도 일어나는 일을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소방관인 매트에게 자신이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를 막으려 한다고 하며 매트를 숲속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매트가 숲에 도착해서 발견한 건 아이들 불장난에 의한 조그마한 불일 뿐이었고, 그때 매트에게 도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무전이 온다. 그제야 셰인은 실은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 형을 구하러 온 것이라고 고백한다. 매트는 서둘러 화재 현장으로 가려고 하고 셰인은 가려는 매트를 밀친다. 매트는 넘어져 나무 밑동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 다시 매트를 재회하던 때로 돌아간 셰인은 이번에는 매트를 살리려 하지 않고, 그와 함께 아침을 먹자고 하며 영화는 끝난다.
일정 시간대가 계속 반복되는 타임 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는 <나비효과>를 비롯해 꽤 많다. 주인공이 미래를 바꾸려고 고군분투한다. 영화 <Exit Strategy> 역시 주인공 셰인이 자신의 형인 매트를 살리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운명을 바꿀 해결책을 안에서 찾는 것이다. 매트와 셰인이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몇 가지 조건만 바꾼다고 운명이 달라질까. 영화는 영화적인 표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도 매트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소방관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사람을 구하려 불길에 몸을 내던지는 매트라는 사람이 그대로인 이상, 그는 언제고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을 운명이다.
또 그 운명 자체가 곧 매트라는 인간이고, 셰인의 형이다. 셰인은 그런 형이라는 사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의 죽음을 바꾸려고 했다. 때문에 그 전략은 어떻게든 실패하게 되어 있는 거다. 그렇다면 매트가 소방관을 하지 않게 막는다면, 혹은 그를 희생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 또한 지금 셰인이 알고 있는 그의 형이 아니다. 따라서 셰인이 아무리 시간을 반복한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매트가 셰인의 형인 사실이 변하지 않듯.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셰인이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넘어선 것이다. 그의 세상에서 나와 형인 매트의 눈으로, 또 더 나아가 세상의 관점으로. 형의 죽음이라는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분명 슬프지만, 계속 반복해 부정하고 연연할 것 또한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셰인은 마지막에야 스스로 만든 속박과도 같은 알람이 울리자 이를 벗어나는 출구전략의 주문을 외듯 말한다. 자신의 세상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부로 착각했던 본인만의 시야에서 벗어나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며, 그러고 나면 색안경이 벗겨지고 진짜 세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