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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y 20. 2024

색의 함정 (녹색 광선)

영화 속 '색' 돋보기

 

 색은 물체를 인식할 때 가장 빨리 보이고 쉽게 사물을 식별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빛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며 빛이 없으면 색도 없어진다. 또 물체의 색은 물체가 가지는 고유의 색이라기보다는 물체가 반사하는 빛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색은 겉보기에 가장 확실하고 분명해 보이지만, 영원하지 않으며 덧없는 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다.

     

 <녹색 광선>에서 델핀은 색을 쫓는다. 문제는 그것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가 찾는 색이라는 것은 때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색처럼 분명하지도 않다. 막연한 휴가철 낭만인 것이다. 그 낭만은 친구들에 의해서, 또 그녀 스스로의 기대에 의해서 이성과 함께하는 어떤 사랑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색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해 혼란을 느낀다. 친구의 가족이 있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도, 낯선 남자들과 어울려 봐도 그녀의 상실감과 공허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만성적인 우울은 그녀가 어디에 있든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를 지배한다.     

 델핀은 영화 내내 시름에 젖어 있고 때때로 울기도 한다. 휴가철 풍경에서 비추는 강렬한 에너지와 반대되는 모습이다. 때문에 관객은 그녀의 친구들처럼 그녀가 휴가의 긍정적인 분위기에 맞게 좋아하는 곳에 가거나 사람을 만나서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기다리고 있고 믿고 있는 한 가지는 운명적인 사랑이다. 그녀의 사랑은 수동적이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 나서지 않고, 다만 주변에서 다가오거나 운명적으로 만나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간혹 눈에 띄는 카드가 자신을 무언가로 이끌고 있다고 믿는다. 수평선으로 지는 해에 비치는 녹색 광선이 비치면 같이 있는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녀 자신에 대한 분석과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판단의 근거를 찾고 운명에 스스로를 맡긴다.      


그래서일까 영화 마지막에 나타나는 녹색 광선과 이를 본 델핀의 환호성은 왠지 불안하다. 녹색 광선을 보며 느낀 갑작스러운 안도와 행복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운명적으로 보이지만 근거 없는 행복이 과연 정말 그녀가 찾던 색이었을까. 노을에 잘못 본 것은 아니었을까.     


 나무가 가진 본래의 색은 녹색이 아니다. 여름에 대부분의 나무가 초록잎을 띠는 것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다. 나무가 지닌 본래 색은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는 여름이 아니라 햇볕이 적어져 더 이상 광합성을 할 필요가 없는 가을이 오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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