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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un 03. 2024

미완의 완 (화양연화)

영화 속 '미완' 돋보기

  사랑은 영원이라는 결말을 향해 가는 것인가. 무상한 순간들의 포착인 것인가.     


영화 화양연화는 사랑의 결정체를 결말로 두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꽃이 피기 직전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꽃은 피는 동시에 곧 떨어지기에 정작 사랑이 빛나는 때는 수많은 미완의 순간에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소려진과 주모운은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라는 걸 알게 된다. 서로를 공감하게 된 둘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 간다. 서로의 손이 스칠 때, 전화벨이 울릴 때,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방에서 서로가 있는 방을 두고 기대고 있을 때, 마음은 서로를 향해 기운다. 그 사랑은 격정적인 애정의 관계로 전환된 다거나 미래를 약속한다거나 하는 결론으로 향하지 않는다. 처음 그들이 만나고 설레고 서로에게로 기운 마음이 봉인된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주모운은 소려진에게 마음을 고백하기보다는 그가 말한 옛날이야기에서처럼 캄보디아의 어느 사원에서 구멍 난 돌에 자신의 진심이 담긴 마음을 속삭이고는 봉인한다. 소려진 또한 남편과 헤어진 후 주모운에게 마음이 기울었던 그 장소로 돌아가 살아갈 뿐이다. 제대로 사랑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던 때로.       


 영화는 매듭지어진 결말로서의 사랑에 의문을 던진다. 소려진은 “결혼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라며 결혼한 후 오히려 자신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또 소려진과 주모운은 언뜻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배우자가 그 사랑을 배신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완성으로서의 사랑에 의문을 표한다.        


 소려진과 주모운이 서로의 사랑을 애써 숨기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간직하고자 할 뿐,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사랑을 하나로 합치지 않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도덕적인 책무 탓도 있지만, 둘은 한번 당한 배신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매듭짓거나 결론지어질 수 없는 걸 알기에, 상대의 마음을 침범하거나 내어주지 않는다. 만개한 꽃이 곧 떨어지는 걸 아는 듯, 둘은 꽃봉오리를 틔우지 않은 채 활짝 핀 꽃을 생각하고 간직한다.     

      


 영화는 이 미완의 순간들을 시각적 장치를 통해 길게 늘여 관객에게 보여 준다. 느린 화면으로 상대가 되어 인물을 바라보는 듯하기도 하고, 툭툭 끊기는 프레임을 통해 마치 하나의 순간순간들을 강조하듯 나타낸다.

 또 인물들 역시 사랑에 있어 미완의 순간들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자 사랑의 결정체인 걸 아는 듯 장면을 반복하기도 한다. 가령 처음 주모운이 소려진에게 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할 때, 소려진은 그 말을 다시 하게 한다.  


 마치 ‘대답’이라는 매듭으로 가는 시간을 잡아두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주모운은 소려진에게 이별의 순간을 연습하자고 한다. 이 역시 결론을 맺기 전 사랑의 순간을 잡아두려는 것처럼 보인다.  

     

 얼핏 측은하고 슬픈 장면들임에도 어떤 격정으로 향하는 그 과정의 감정은 결론으로 도달했을 때보다 고귀하며 경건하다. 그 과정에는 쉼 없는 긴장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에너지가 요동친다. 결론을 향해 가려고 하는 건 안정을 취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며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름답진 않다. 더욱이 무상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하는 사랑은 결론은 없으며 끊임없이 요동치는 상태에 가깝다. 결론짓지 않고 다만 마음을 맡길 뿐일 때 사랑은 그 본질로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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