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범자인가.
'밀양 사건'이 거론될 때마다 묻곤 한다.
우리 반에 피해자가 있었다. 밀양 사건보다 훨씬 이전 일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가려면 시험을 쳐야 하는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외고, 과고도 아닌데 서열이 정해진 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교복이 성적표였고 학생 됨됨이의 상징이었다. 무엇보다 학교 이름이 부모의 프라이드였다.
수능 100일을 앞두고 있었다.
백일주(酒), 수능 전 관례처럼 몇몇이 즐기던 이벤트였다.
각각 성적 1위였던 남고, 여고. 예쁘고 잘생긴 학생만 가입할 수 있었던 특정 서클에서 백일주를 마셨고 사건이 터졌다.
상대 학교 남학생 9명, 우리 학교 여학생 1명.
음주 문제를 제외하고 성폭행 관련자만 특정한 인원이었다. 우리 학교는 채 1주일도 안 돼 처분을 내렸다. 조용히 묻어버리겠다는 의미다. 친구는 한동안 복도에 책상을 두고 자습하되 수업에 들어올 수 없었다. 남학생들의 처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법적 처벌이 없었던 건 확실하다.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대학.
가해자 쪽에 이미 수시로 SKY대를 확정 지은 학생이 포함돼 있었고, 나머지 학생들도 SKY대, 사관학교에 지원할 예정이었다.
당시 돌던 말들이 밀양 사건과 다르지 않았다.
-함께 즐겼다, 양측 모두 잘못한 일이다, 조용히 지나가자, 소문나면 손해 보는 건 여자 쪽이다.-
손해, 득 볼 일도 없는 사건에 손해라고 했다.
다들 침묵했다. 때론 뒤에서 험담을 하기도 했다. 특출나게 예쁘고 잘생겼는데 공부도 잘하는 애들이 얼굴값 하느라 저지른 일탈 정도로 치부했다. 수능이 코앞이라 남 걱정할 상황도 아니었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라고 어떤 어른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여학생, 피해자는 서울권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지역으로 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문이 파다한 지역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반면 남학생들, 가해자는 선생님의 바람대로 학교의 성과가 되어 그해 현수막에 자랑스럽게 기록되었다.
-축, 서울대 00명, 연세대 00명, 고려대 00명, 서울권 총 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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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라고 가르쳐주는 어른도, 인식하는 사람도 없었다. 범죄가 아닌 일탈이라는 말에 '피해자'가 사라졌다.
'명문대', '학교 성과' 앞에 교육자와 부모조차 눈 감아 버렸다.
아이가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괜찮은 척, 꼿꼿한 자세로 무너지는 동안 상처를, 범죄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일주 때문에 입시에 실패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모두가 오가며 힐끗거리는 시선이 학칙 위반에 따른 처분보다 더 가혹한 처벌이었음에도 백일주가 가해자였고 사건의 본질이었다.
공범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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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여고생처럼 다이어트한다고 다리에 하얀 붕대를 감고 복도 끝에서 고개 숙여 공부하던 모습만 기억이 난다. 그런 탓에 친구가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아로새겨진다.
덩달아 고개를 들 수 없다. 방관하고 침묵한 벌을 받는 기분이다.
사진 출처: pxfu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