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쯤에는>
어쩌다 귀에 꽂혀 하루에도 수십 번을 반복해 듣는 곡이다.
분명 이쯤에는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분명 이쯤에는 뭘 할 때가 됐는데....
듣다 보면,
오래전 일, 연애, 인생 수십 가지가 애틋하고 수치스럽게 뒤엉켜 그리움인지 반성인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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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30분.
분명 이쯤에는 연락이 와야 하는데.
종대가 일이 끝났다고 연락하는 시간이다. 신문사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한 지도 3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새벽에 집에 가기 아쉽다며 지나가는 길에 한잔하고 싶어 연락하곤 했다. 영훈의 친구라서 알게 된 녀석이지만 영훈 없이도 곧잘 만나 술을 마셨다.
"평점이 2.0이라고? 네 시력이 아니고, 평점이라고? 취업은 포기했어?"
"그냥 마셔."
시답지 않은 대화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래도 되나 싶게 편했다. 보수적인 조직에서 엄격한 주도(酒道)로 술을 먹던 내게는 더할 나위 없었다. 비위를 맞추느라 웃으며 대화할 필요도 없었고, 서로의 빈 잔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도 가끔 종대가 속이 문드러졌다는 말을 재채기하듯 던지고 아무렇지 않게 거두곤 했다.
"엄마가 사채를 쓰셨어. 집에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마셔."
서로 위로하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종대가 과하게 웃으며 다급하게 술을 먹자고 하면 화가 많이 났다는 것쯤은 알았다.
"우리 누나, 그 새끼랑 결혼해. 임신했데."
"마셔."
요즘에도 새벽에 잠이 깨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할 때면 무심코 내뱉곤 한다.
-종대 인쇄소 끝날 시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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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 종대와 평소대로 진탕 술을 마시고선 영훈의 선배 결혼식을 가던 날이었다. 뷔페로 적당히 해장하고 웨딩홀 구석진 복도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잠을 자다가 어두워지고 나서야 일어났다.
-우린 직장인이었지만 정말 쓰레기 같은 이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
"해장술 해야지?"
"오늘 불꽃축제라고 하지 않았어? 길에 갇히기 전에 가자."
불꽃축제보다 해장술이 더 중요했다.
분명 여의도에서 관악구로 가야 했는데 이상하게 한강대교에 갇혀버렸다. 운전할 때 도통 화를 내지 않는 영훈임에도 화를 내는 걸 봐서는 의도한 건 아닌 모양인데 모든 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냥 내릴까?"
어처구니없게도 셋이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앉았다.
"내 여자 친구가 애인이 생겼데."
영훈의 말이 불발되는 불꽃만큼 어이없다.
"국어야, 불어야? 무슨 말이야?"
"여자 친구가 바람이 났다고?"
"응."
영훈은 어지간히 알아주는 회사에서 꽤 높은 연봉을 받았고, 7년이나 사귄 여자 친구였다.
"뭐 하는 사람인데?"
"엔터 회사 사장."
"…."
우린 그날 불꽃처럼 따갑고 속이 쓰리도록 밤새 해장술을 마셨다. 여자 친구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엔터 회사 사장과 결혼했다.
이후로 여의도 불꽃축제를 갈 일은 없었다. 그래도 10월이 되어 불꽃축제 기사가 쏟아지고 날이 쌀쌀해지면 나의 시간이 한강대교 자동차 보닛 위로 맞춰진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불꽃 같았던 젊음이 어김없이 쏟아져 내린다.
-분명 이쯤에는 효창공원으로 과메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을 텐데.-
한강 러닝을 할 때 특별히 좋아해서 꼭 들르는 장소에 롱보드를 타는 크루가 있다. 정말 할리우드 영화 속 '하이틴'이라는 단어가 살아 움직이듯 젊음이 예쁘다. 어쩌면 그래서 이십 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열정과 폐인 그 어디쯤에서 어영부영 살던 시절이 그리운 듯, 부끄러운 듯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어 답답하고,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틈을 내어 애틋하게 만나던 시절.
이래서 뭐든 추억은 만드는 게 아니다.
그래야,
'분명 이쯤에는' 따위의 생각을 하지 않지.
사진 출처: Unsplash의 Korney Vio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