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머물다 떠날 생각에 읽을 책도, 입을 옷도 몽땅 다 두고 온 곳이었는데. 중고로 산 나무 식탁과 누울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간이침대를 들이고 창가에 작은 꽃화분 하나를 두었더니 어느새 이 곳은 또 다른 집이 되어버렸다. 작은 방 한 칸이었는데, 이곳은 또다시 집이 되어버렸다. 어쩌자고 나는 이곳에다 집을 만들어 버렸을까.
어쩌자고 나는 또다시 이곳에다 마음을 쏟고 있는 걸까.
언제든 마음이 동하면 휙-하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결국 나에겐 집이 두 개나 되어버린 것이다. 난감하다. 여기에 머물러 있자니 춘천에 두고 온 집 걱정이 되고, 그렇다고 춘천에 자주 건너가자니 이곳에서의 삶이 마음에 밟히게 되어버렸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을 하찮은 말 취급하며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요즘이다. 진짜 인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기보다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끄집어내 보려는 태도다. 아,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뭔가 되어 보려고 이곳으로 옮겨 왔지만 결국 나는 여전히 나여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그렇게 다시, 이곳에다 집 하나 만들어 그 속으로 파고든다. 여전히 피곤하여 집을 만들고, 또다시 마음을 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