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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Nov 25. 2021

윈드송

내가 그 친구와 가까워진 건 그 애의 자신감 때문이었어. 휠체어에 앉아서 그 높은 교문 언덕을 끙끙대야 했던 주제에, 한 번도 주눅이 들거나 그 언덕을 포기하거나 하지 않았거든. 말투도 얼마나 단호하면서... 젠틀한지. 그 친구 주변엔 늘 사람들이 북적였어. 누구든 그 친구 옆에 앉아서 오랫동안 그 애 말을 들으려 했다면 믿겠어? 동급생들이 말이야. 마치 스무 살 새내기가 마흔쯤 는 괜찮은 어른의 멘토링을 받는 것처럼.


그런데, 정말 그 애 말속엔 뭔가... 빛나거나 깊거나 하는 단어들이 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어디서 누군가의 것을 주워 담았다가 내뱉는 게 없는, 그러니까 가벼운 데가 없는... 것들이었어. 체득. 그래, 체득이란 말이 맞겠다.


그 친구의 말은 그 애가 직접 체득한 단어들로 가득했어. 나는 수많은 단어들 중에 그 애 입에서 나오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참 좋았던 것 같아. 그 애가 내 앞에서 다소곳하게 앉아, 물론 휠체어 위에 앉아서 윈드송을 연주할 때면 난 그 친구가 말하는 희망을 상상했어. 맨발로 풀숲을 걷는 새하얀 두 발을. 빠르게, 빠르게 걷다가 결국 내달리는 두 발을. 그 애도 그런 상상을 했을까? 그 애가 꿈꾸던 희망이 그것이었을까?


희망을 체득한다는 건 뭘까? 아니 그걸 체득할 수나 있을까? 간절히, 정말 애절하게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결국 그것에 닿지 못하는 것. 아주 오랫동안 닿지 않은 그것을 향해 여전히 시선을 고정시키고, 숨을 고르고. 다시 또다시 간절히, 애절하게 바라는 것. 그 '희망'이라는 말의 무거운 공포.


십 년도 더 지난 지금의 나는 그 친구가 말했 희망이 싫어. 짜증 나. 왜냐고?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것이 여전히 희망으로만 남아 눈물을 쏟게 만들거든. 상상 속 새하얀 맨발들. 풀숲을 내달리는 속도. 되고자 했던, 반드시 가닿고자 했던 것과 우리 사이의 간극. 그걸 희망이라 부른다면, 너무 가혹해. 차라리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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