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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을 Jul 18. 2019

[언젠가는 써야만 했다] 미숙2

급할 때는 미적거리더니 정작

우리는 감정적이다. 

말이 지나치게 없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많다.

가끔 대화는 분노로 차오르고, 평균적으로는 적당히 높은 텐션을 평균치로 두고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그렇게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 왔고, 어느 순간부터 이 대화의 텐션에 발맞추기가 어려워졌고, 근래에는 우리를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이 끊어질까 봐 염려되어 간신히 그 무언가를 붙잡듯이 대화를 이어왔다. 


거리상 멀지도 않은 곳으로 몸을 옮겨 엄마와 떨어져 지낸 지 불과 5일째. 

비슷한 감정선을 가진 나로선 엄마의 상태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적응될 일이지만 지금은 너무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사하기 전보다 훨씬 더 자주 카톡을 주고받았다.

    조립식 가구를 샀어, 평생 똥손인 줄 알았는데 나 평균손이다? 


엄마는 우리 딸이 그 정도는 하지~ 하며 응수해왔다.

전날 밤의 울음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공허하고, 감정을 누르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도 우리는 서로 크게 반응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오겠지만, 그 '원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엄마는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고, 친절하고 다정하며, 손재주(만들기, 요리, 조립, 수리 등)가 좋고, 걸어 다니거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수필이든 시든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사람이다.

이 중 몇 가지는 엄마의 과거 회상 토크 타임에 잡아낸 과거의 특징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엄마에게 여전히 내재해 있을 거고, 단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일 것이다. 나는 그런, 그랬던 엄마의 모습이 좋고, 닮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한다. 옛날에도 지금도. 자책하는 것에 익숙한 성격마저도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리고, 타인을 비난하는 데 바쁜 사람들을 보며 엄마가 가진(나도 가진) 성향이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꽤 큰 단점이 있지만 때로는 얼마나 귀한가,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적당해야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좀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일째가 되는 날, 엄마로부터 이사 오기 전의 내 방에 있던 휴지통 사진이 전송되어 왔다. 

"소독해서 널어놨는데~"

아차. 이미 새 휴지통을 들여놓았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그렇다고 좁아터진 방에 두 개의 휴지통을 놓을 일은 아니었다. 그 휴지통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깨끗하게 계속 쓰겠다고 답장하며 멋쩍은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무엇이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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