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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Jul 04. 2022

일요일 밤엔 동네카페에 갑니다

경기 외곽 지역에 규모가 큰 카페가 꽤 많이 자리 잡았습니다. 넓은 공간, 다양한 메뉴, 눈 돌아가는 인테리어 등등. 오고 가는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매력을 가진 공간들. 높은 천장과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입맛 돌게 하는 음식들을 보면서 이곳보다 더 놀라운 곳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눈뜨고 나면 새로운 대형 카페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아, 경기 외곽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대형 카페가 유행처럼 생기는 게, 마치 서로 경쟁하는 듯합니다.


물론 맛있는 음식과 좌중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경험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인증'을 위해 이런 공간을 찾습니다. 입구에서 한 컷, 로비에서 한 컷, 메뉴를 보며 한 컷, 음식을 놓고 한 컷, 자리에 앉아 한 컷, 떠나기 전에 한 컷. 거기에 스폿(spot)이라는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카페를 검색하면 수많은 인증숏을 볼 수 있는 것도 다 이 인증 덕분입니다. 비싼 음식값에도 불구하고 인증을 위해 끊임없이 방문합니다.


반대로 동네 곳곳에 작은 카페들이 꽤 많습니다. 나름 인스타그램 명소가 된 곳도 있고, 오랜 기간 동안 팬층을 확보한 실력 있는 카페도 있습니다. 대형 샹들리에는 없지만, 화려한 메뉴도 없고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 하는 명소도 없지만, 동네 카페는 대형 카페와 다른 편안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일보다 더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일요일 밤입니다.


내일도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합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시간이 흘러 어느덧 12시가 되고 오후 3시가 되고 오후 6시가 되면 왠지 모를 불안함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라던가요. 어제는 이른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낮시간 달궈진 아스팔트와 인도의 열기를 피해 동네카페에 가자라고 가족과 합의를 봤기 때문입니다. 보통 일요일 밤에 카페를 찾지 않습니다. 다음 날 무사히(?) 일어나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저녁부터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습관을 10여 년 들여놨더니,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온 날에는 오후부터 꼼짝 않고 집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런데 어제는 낮도 아닌 밤에 꼭 동네 카페에 가고 싶었습니다. 카페에 들러 여유를 충전하고 감정을 추슬러야만 다음 주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가족과 카페로 향했습니다.


넓지 않은 공간, 서로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며 자리 잡은 테이블.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 소란함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오길 잘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움직임도 감정까지도 천천히 흐릅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저도, 가족도 느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걱정은 안 됩니다. 생각보다 넘치는 여유와 느림에 금세 익숙해지기 때문이죠. 천천히 시간과 공간을 느끼며, 천천히 감정이 차오릅니다. 많지 않은 대화를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간단한 케이크를 함께 먹으며 일상을 나눠봅니다.


대형 카페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동네 카페만의 소소한 여유를 느끼며, 감정의 회복을 경험하며, 앞으로 자주 동네 카페를 찾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 일요일 밤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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