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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VN Solo Jan 14. 2020

권리는 원래, 어디에 있었나?

A Is Chuck (2)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2018)』

권리의 확대. 당연하게 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권리는 권리끼리 충돌하기 마련이다.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지만, 동성애자들이 거리에 나와서 막 흔들고 요란스럽게 하는 건 싫어!'라고 말하는 건 좋은 예시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는 존중하지만 누군가가 호들갑 떨 권리는 불편하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거리에서의 진한 애정행각은 그 성별을 막론하고 불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성적 지향의 문제를 떠나보자. 장애인들 간의 애정행각은 어떤가? 우리는 이런 모습을 거리에서 거의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출판사 사계절


 김원영의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여성주의 문제에서 나아가 소수자 인권 전반을 주목하기 시작한 요즘 시류의 그 시발점과 같은 작품이다.* 저자는 여러 사회학적 단편들을 빌려와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근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에 관한 법과 법에서 나아간 도덕적 실천을 모색한다.
 책이 특별한 지점은 끊임없이 실천적 자세로 '장애'인으로서의 실존이 아니라 장애'인'으로서의 실존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인간 사회에 장애를 가진 부산물 혹은 잔여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존재함을 주장한다.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 모두  삶'들은 법 앞에서 구체적인 서사를 가진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 된다(P. 184). 저자는 개인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그 개인 자체의 고유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타인의 삶을 잘못되었다고 규정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이런 '정신승리'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P. 129).
 1급 지체장애인인 저자는 장애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지적하기도 하고 동시에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서울대 로스쿨을 나온 인권 변호사로서 사회를 향한 제언을 던지기도 한다. 앞서 말한 단순한 의미의 '정신승리'와 개인의 존엄성이 다른 지점은 적극적 수용에 있다. 개인이 정체성의 수용에 성공한다면, 그는 장애와 질병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특질을 가지고 살아갈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다(P. 153). 이런 개인에 대해 유명한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의 "우리는 소위 '결함학'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여서 '이야기학'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라는 말을 빌려와 개인의 서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이 개인의 서사에 기반을 둔 가장 실용적인 권리로 모두가 어디서든 편안하게 오줌을 눌 자격이 있다는 '오줌권'(P. 212)을 들기도 한다.
 글은 장애인의 인권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사회학 곳곳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의 사상적 흐름 위에 놓긴 어려운 저작이다. 학술서는 아니란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구자가 아니라 삶을 실천하는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글의 영향력은 유효하다.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을 담은 영화 『오아시스』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받았으나 일각에서는 이를 '장애인을 평면 화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장애인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저는 늘 지켜요"라는 말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양심 냉장고 1화의 정신 지체자 주인공,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장애인'이라는 이튿날 기사를 생각해보자.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의 틈은 단지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지체장애인이자 서울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김원영은 말한다. '잘못된 삶'이란 없다고. 다시 이 글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자면 '권리의 확대'란 없다. 단지 원래 있던 권리를 되찾아 나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 최근 주목할 작품으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등이 있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 (요조x장강명)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p. 71
장애인의 실존이란 … 어색한 시선을 받고,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되는 일이다. p. 87

 "버스는 대중교통이잖아. 장애인은 대중이 아니야?"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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