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음복(飮福, 2019)」(2020 제10회 젊은 작가상 대상)
문학동네 100호를 시작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만났다. 작품의 핵심 소재는 ‘무지(無智)’다. 가부장제 내 남성의 무지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읽는 게 작가의 의도에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음복(飮福)」에서 남녀 갈등이나 사회 문제보다 근원적인 이해 불가능의 문제를 주목하려 한다. 잘 짜인 서사, 완성도 있는 캐릭터 덕분에 읽을수록 신비로운, 아주 낮은 주파수로 아주 멀리까지 울리는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작품이었다.
작 중 여성의 가장 큰 특징은 분노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체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세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p. 387) 세나는 남편인 ‘정우’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단정 지은 채 시어머니의 음모, 그러니까 정우에게 숨기고자 하는 터무니없는 계획에 동참한다. 강화길은 세나를 통해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일정 부분 동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인간을 보여준다. 이는 세나가 악역을 자처하는 엄마 편을 들고자 하는 부분에서도 되풀이된다.
세나는 시스템 전반을 모두 파악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구적 존재는 아니다. 정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에서 세나와 정우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베트남전 이후 서로 대화할 수 없는 관계로 변했다. 작중 유일하게 남성에게 화를 내는 인물인 할머니는 수십 년이 지나서 이렇게 말한다. “왔는데…… 돌아오지를 않아.”(p. 380) 세나도 베트남전을 겪은 망자(亡子)를 ‘살아 돌아와서 1년 동안 집에 처박혀 있던 사람. 아내가 매일 출근하며 차려놓은 밥상엔 손도 대지 않은 사람’으로만 볼 뿐이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p. 364). 세나의 단호함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간의 차연(différance)을 되풀이해서 나타낸다. 세나의 정우네 집안에 대한 이해는 ‘악역’이라는 고리로 엮인 세나의 과거에서 비롯된 해석일 뿐이다. 그렇게 세나는 정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내포한다. 물론, 정우 역시 세나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다.
데리다의 시선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강화길이 정우를 지나치게 ‘모르는 사람’ 그 자체로 그렸다는 점이다. 정우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까? 정우는 권력 암투를 좋아하는 남자다. ‘그만한 드라마가 없어. 참 시시해’(p. 365) 정우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는 사람일 쪽이 높다. 역사적으로도 황제는 후궁들의 암투를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후궁들의 암투를 알면서 자신의 권력을 높이는 쪽으로 은근히 활용하거나, 후궁들의 싸움을 말리려 하나 그러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우의 무지(無智)도 세나의 선택만큼이나 관찰과 계산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하나의 비밀로 엮여있긴 하지만 세나, 시어머니, 정우 고모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이해한다. 세나는 서로 다른 방식의 이해를 깨달아가며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침묵이나 방관과는 조금 다른 태도이다. 정우의 태도 역시 동일 선상에서 읽고 읽혀질 때 제도에 더 잘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