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it (3) 풀 코스 한국 문학
"작가란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젊은 작가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주로 쓴다. 더 경험이 많은 작가들은 젊은이와 중년의 위기를 쓴다. 신춘문예 심사평에서 등장한 '취업준비생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많이 등장한다'라는 경향성은 사회 이슈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작가의 본질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흔을 넘기기 전까지 노인의 소외를 다룰 순 없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물리적 나이는 지구 상 모든 생물체가 똑같이 먹어가는 거지만 생물학적 노화는 저마다 다른 속도이며 정신적 성숙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치 무협지의 문주처럼 일 가(家)를 이룬 중진 작가들은 저마다의 세계를 구축하고 거기에서 어린아이와 젊은이, 중년 그리고 노인까지 모두를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등장하는 일곱 작가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 중견 작가들의 단편을 평가한 이 문학상에서 최종 선정된 그들의 면면은 동시대 문학의 기둥이라고 할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집은 더없이 훌륭한 고급 뷔페나 마찬가지다.
고급 뷔페이기 때문에 여기에 자극적이고 화학물질로 가득한 불량 식품은 없다. 그렇지만 신선도가 중요한 품목은 가장 신선하게 유지되고, 숙성도가 중요한 재료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숙성되어 있다. 자전거를 훔친 할머니를 이야기한 대상 수상작 윤성희의 「어느 밤」을 시작으로 재일 교포와 유학생 사이의 묘한 갈등 구조를 포착해낸 김금희의 「마지막 이기성」까지 각각의 작품들은 독창적이거나 완성도가 높거나 둘다에 해당한다.
앞서 고급 뷔페라 설명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책을 읽으면 미슐렝급 레스토랑의 저녁 코스와도 마찬가지다. 어떤 순서로 편집된진 알 수 없으나 노인의 귀여운 일화를 애피타이저로 노인의 죽음, 숲 속의 기묘한 이야기, 암 환자의 죽음, 할머니 묘의 이장은 묵직한 메인 코스 같다. 끝으로 의심스러운 수련원에서의 사혈과 젊은 남녀의 연대는 독창적이면서도 달콤한 게 디저트로 딱이다. 작품 말에 등장하는 작가 노트와 심사평(혹은 감상)은 각 요리와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파동을 준 작품은 「파묘」였다. 교과서적인 작품이었다. 해방 이전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국민 정체성을 확장된 가족의 의미에서 능숙하게 그려낸다. 가장 재기 발란한 작품은 「운 내」로서 신선한 언어 활용은 「관객 모독」을 떠올리게 하고 대낮 시골의 스산함은 《기생충》이, 어린이들의 교감에서는 《우리 집》이 떠올랐다.
작품 모두가 만만찮은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모음집이라는 점에서 각 단편에서 다른 단편으로 넘어가기란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을 덮을 때는 삶에서 그리고 문학 경험에 있어서 큰 선물이 될 것이 분명한 책이었다.
아내가 물었다. 나는 얘기할 수 있었다. 칼에 찔린 사람과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시체가 아니라, 장인이 어째서 내내 잠잠한지, 요즘 장인은 약을 한 번에 몇 알이나 먹는지에 대해서. - 편해영, 「어쩌면 스무번」 p. 101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황정은, 「파묘」 p. 174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승미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ㄷㅎ 게 늙기 직전의 남자라던데." 우리는 키득거렸다. 어쩐지, 얼굴이 ㅈㄴ ㅌ 쏠리더라니. - 최은미, 「운내」 p.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