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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촌 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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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VN Solo Jun 26. 2020

현실, 적.

이촌향도 (16)


 오늘도 한 시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나오지 않으면 방이 날 잡아먹을 것 같아서. 어제는 오랜만에 교수님에게 연락해 2주간 논문의 수정 방향을 고민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같은 지도교수님 아래에 있는 친구와 선배에게 중단시켰던 논문을 봐달라는 인사를 건넸다. 아직 내가 논문을 볼 수 있을만한 상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모두가 봐주고 나도 다시 보고 한다면 좀 내용이 달라지고 방향을 재조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누나는 한 소리 할 수도 있겠다. 조급해져서는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차근차근히 해라는 조언. 맞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심한 불안과 초조, 그리고 끈기 없음을 겪고 있다. 오늘도 운동할 때 트레이너가 나에게 말했다. 회원님은 하드웨어는 충분한데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다고. 1일1깡을 해야 한다고 깡이 있어야 는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의 후기를 들어보면 내가 등단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책을 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놀랐다는 게 거절의 가장 큰 이유였다. 하긴 대화는 잘 통했고 헤어지는 길에 손인사까지 했으니 나쁜 만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녀가 느끼기에 나는 아직 현실적이지 못하고 꿈꾸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누나는 모름지기 그 나이 때의 여성은 현실적인 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조금은 돌려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대학원을 계속 다닐 것을 언급한 기억이 난다.)

 이번 주에는 틴더를 통해 재밌는 대화를 했다. 본인은 교대 나와서 선생님 하는 데 서울대 나온 사람 만나게 되어서 좋다고.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즐겁게 그녀는 나의 직업을 물었다. '대학원생이요.' 그러더니 본인은 전문직을 찾는다며 쿨하게 떠나려 했다. 나는 괜히 발끈하는 마음에 '서울에 집 있으면 됐지.' 하니까 그녀는 집 있는 건 당연하고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틴더엔 그런 사람 찾기 힘들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틴더를 통해 전문직 남성을 찾았을까? 그와 행복한 연애,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 주 간의 여성과의 만남에서 나는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아직 군대도 가야 하니까, 내가 1인분의 삶을, 내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월급 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해낼 수 있을까. 모두 나보고 어리석다고 하는데 그런 세상을 등지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글 쓰는 사람으로, 기고가로, 카페 노동자로 말이다. 그렇게 자리 잡는 동안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굳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왠지 서글프다. 부정적인 기분을 잊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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