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 향도 (18)
세 시에 일어났다. 어제 약속을 다녀와, 한 시에 잠들었으니 꼬박 열네 시간을 잔 셈이다. 3일 내리 열네 시간을 자고 있다. 열네 시간을 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활동 시간이 열 시간뿐이라는 뜻이다. 오늘같이 어제 원래 자야 할 시간보다 세 시간을 늦게 잤다면 오늘의 활동 시간은 일곱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남들처럼 일곱, 여덟 시간을 자고 일어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어도 열 시간은 자야 일상생활 비슷한 모습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열 시에 자야 한다. 그래서 오늘의 활동 시간은 일곱 시간이 된다. 그중 두 시간은 무언갈 먹고 하고 미드를 보는 데 사용했다. 내가 식사가 아닌 '먹기'라고 표현한 건 곱상한 그릇 위에 음식을 (정갈하지 않아도 일단) 올려두고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락앤락 통에 담긴 닭가슴살 한 조각 (120g 남짓 될 것이다)을 집어 먹었고, 해동시켜두었던 호밀빵 두 조각을 비닐봉지에서 꺼내 먹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라 먹는 것에 민감하다. 아이스크림도 바 형 아이스크림만 먹고 있으며 오늘처럼 활동이 없는 날엔 그냥 한 끼만 먹으려고 한다.
14시간 동안 잔 이야기, 늦은 점심 식사를 대충 때운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까지 오늘 별거 안 했기 때문이다. 원래 병원을 가는 날인데 가지 않았다. 병원만 가지 않았는가? 월요일에는 아침 운동과 가려던 리딩클럽을 가지 않았으며 (약속도 안 가고 싶었으나 얻어먹는 데에는 필사적이기 때문에 퇴근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요일에는 모임 중간에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중간에 빠져나와 여덟 시도 되지 않아 잠들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나 스스로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비비큐 한 마리를 꾸역꾸역 먹어 재꼈다.
금요일 저녁 제자 모임을 마친 이후로 급속도로 아니, 단절적으로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걸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울기다. 그렇게 울기는 갑자기 찾아온다. 울기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며 그저 하루 종일 잠들고 싶어 진다. 오늘도 다섯 시가 넘어서야 카페로 기어 나왔지만 온 지 삼십 분 남짓된 지금도 그냥 집으로 다시 들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기분이다.
이런 시기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저 평소 읽어야 할 책들을 들고 오는 대신에 읽고 싶은 책들을 충동적으로 바꾸어 들고 왔다. 얼른 이 울기를 지나 다시 안정될 수 있기를. 그저 하루 몇 안 되는 할 일을 내가 해낼 수 있기를. 무기력한 내가 아니기를. 울고 싶지는 않지만, 울기를 견디는 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