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서 공자는 옛날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배웠지만 오늘날은 남을 위해 배운다고 말했다. 공자의 위기지학은 단순히 자기를 위해서 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기를 단련하는 수신의 수단이 되는 학문을 말한다. 자신을 위하든 남을 위하든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배우고 익히는 궁극적인 본질은 나를 단련하여 남과 함께 복된 세상을 여는 상생의 삶을 사는 데 있다.
오늘 필사 글에 따르면, 작가는 배움의 목적보다는 자세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나와 남을 위한다는 학문의 목적에 앞서 배우려는 자세를 먼저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자세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을 위한 전제조건임을 강조한다.
필사를 대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책을 왜 따라 쓰는지, 필사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지도 중요하지만, 필사에 임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어떤 태도로 필사를 하는가가 목적 달성의 가능성을 저울질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한 번에 많은 내용을 쓴다고 지식과 통찰력을 한꺼번에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문장의 필사로도 충분하다. 다수의 문장을 의식 없이 따라 쓰기보다는 압축된 하나의 글에 자신의 생각을 대입하고 비교해 본다. 하루에 한 생각만 다루어도 된다.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성장하는 게 필사의 목적이다.
건너뛰지 않는다.
모든 책에는 문맥이 있다. 작가는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흐름을 만든다. 필사는 독서다. 문맥을 놓치는 독서는 시간 낭비다. 꾸준한 필사는 문장의 파도를 타는 것과 같다. 손글씨로 문자의 물결을 가르며 빈 노트에 글을 옮긴다. 어제의 내용과 오늘의 문장을 잇는 연결고리를 찾으며 필사한다. 매일 필사가 가장 이상적이다. 시간이나 문장의 양을 정하여, 건강한 치아를 위해 하루 세 번 양치질을 하듯, 선명한 뇌의 주름을 위하여 하루 한 번 필사를 권한다.
산만하게 필사하지 않는다.
필사는 압축적이고 긴박하게 진행한다. 야구의 9회 말처럼, 축구의 추가시간처럼, 양궁의 셧오프처럼 긴장감이 흐르고 시간의 질량은 증가한다. 10분의 필사는 1분처럼 흐르지만 그 과정은 치열하다. 눈동자와 입술은 단어와 문장을 분해하고 손가락과 그 끝의 펜은 흩어진 텍스트를 다시 조립한다. 반복되는 문장의 해체와 결합의 공정에 내 몸속 모든 세포들이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