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장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면, 그 장면에 이어지는 다음 장면을 그리면서 동시에 그 장면의 옆과 뒤를 묘사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 길거리에서 엄마한테 야단맞고 우는 아이를 묘사한다면 단순히 상황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글이 미진하다. 그 엄마의 목소리에 실린 분노와 피로감, 아무 능력 없는 아이의 무력감도 함께 그려주어야 한다. 여러 겹의 상황을 상상하고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때 감정이입의 능력은 필수다.
글씨 연습을 위한 필사라도 글자만 따라가는 단순한 필사는 피해야 한다. 글씨 연습의 재료로 단어, 문장, 문단을 그대로 옮겨 쓰는 일은 분명 도움 되지만, 항상 필사와 함께할 수 있는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한다. 손으로는 글씨를 쓰지만 다른 감각기관은 필사와 동행하며 다른 일을 하는 입체적인 필사를 해보자.
펜으로 리듬을 지휘한다.
음악에서 리듬이 생명이듯, 글도 리듬과 박자가 중요하다.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로 쓰인 글이 읽기 좋은 이유는 바로 리듬 때문이다.
달변가의 연설을 들어보면 발성과 어조가 귀에 쏙쏙 박힌다. 그들의 말에는 템포와 높낮이가 존재하여 말솜씨를 돕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달필가의 문장은 호흡이 쉽다. 읽기 편하도록 장단을 만든다.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연결을 통해 독자의 숨을 편하게 한다. 필사를 통해 작가의 리듬을 간접 체험한다. 띄어쓰기와 문장의 장단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필사한다. 금난새가 지휘를 하듯 속도를 조절하고 지휘봉을 잡듯 펜을 잡고 박자를 익힌다.
필사 후에 작문을 한다.
글씨 연습을 마쳤다면 바로 글 연습도 한다. 작가의 정제된 표현과 일정한 템포를 손글씨로 익혔다면, 비슷한 형태로 나의 이야기를 써본다.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단어의 변화, 문장의 재배치, 문단의 치환 등을 통해 나만의 문장으로 나타낸다. 표절을 넘어 모방, 모방을 넘어 창조로 이어지는 필사를 시작부터 염두에 두고 실천한다.
필사 노트는 역사다.
책 한 권 필사를 끝마쳤다면 책 내용을 온전히 담은 노트를 복기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필사가 아니라, 내 글씨의 역사를 담는 경건한 필사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노트를 순서대로 모아둔다. 첫 번째 노트와 마지막 노트를 동시에 펴 차이점을 찾는다. 무엇이 좋아졌고, 어떤 부분이 더디었는지 스스로 분석한다. 분석의 결과를 두 번째 책 필사에 고스란히 녹인다. 내 글씨의 스토리는 곧 나의 히스토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