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던저진 계란
완벽한 회사는 없다. 조직문화가 문제 일수도 있고 직원들끼리의 갈등이 문제일 수도 있다. 누구는 최고의 회사라고 인정받는 회사에서 갈등을 겪고 퇴사를 하고 누구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만족한다. 만족이라는 부분은 개인마다 삶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보면 기준도 없고 사례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내가 만드는 결과물이 기준이 되고 사례가 된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배울 수 있는 기회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삽질을 자주 하게 된다.
이렇게 엉성하고 연약한 시스템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오장육부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빡침을 경험한다. 했던 일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고 했던 일을 다시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여름철마다 개봉하는 공포영화보다 무섭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서스펜서 영화 같은 스릴을 매일 경험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생기는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고 싶다. 다른 기업 사례도 공부하고 조직문화, 매니지먼트 관련 정보도 수집한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가지고 회사에 적용해보기 위해서 팀장님께 전달드린다. 그러나 별 관심이 없으신지 피드백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관심한 상사를 설득하고 조직을 바꾸고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잘해야 한다. 그리고 무슨 회의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상사는 부재중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전적인 의지는 맥이 빠진다.
현실적으로 희망찬 미래가 보이진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은 약하다. 그래서 상사의 조력이 필요한데 의지가 없다. 그리고 대표님을 포함한 다른 상사분들도 현재 상황에서 딱히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 번째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내 업무만 관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동료 직원들을 위해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도전하는 것이다.
두 가지 옵션을 일취월장에서 나온 의사결정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서 점검해보자.
1. 인식론적 겸손을 갖췄는가?
완전하게 인식론적 겸손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부정적 감정을 바탕으로 옵션을 만들었다.
2. 선택 안은 정말 충분한가?
혼자만에 생각으로는 더 이상 옵션이 생각나지 않는다. 인생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좋을 것 같다.
3. 검증의 과정은 거쳤는가?
정말로 상사와 조직은 바뀔 수 없을까? 검증되지 않았다.
4. 경쟁자를 생각했는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서 만들어진 역량은 경쟁자와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5.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대비했는가?
첫 번째 옵션의 최악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내부 상황으로 본다면 연봉 협상의 여지도 낮아진다. 그래도 괜찮다. 때를 보고 이직하면 된다.
두 번째 옵션의 최악은 이도 저도 아닌 커리어와 상사로부터 이상한 놈으로 찍히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자기 효능감도 떨어진다. 이건 최악 중에 최악이다. 대비가 힘들다.
두 가지 옵션을 가지고 점검해본 결과 상사와 진솔한 대화로 바뀌기 힘들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나는 회사에서 덜 열심히 해야 한다. 내 할 일만 잘하면서 때를 보고 이직을 해야 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상사와 진솔한 대화를 하기 망설여진다. 아직 그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솔직하게 마음이 아프다. 회사 동료들은 대부분 연차가 짧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많다. 나는 저 동료들이 일 잘하는 법과 회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회사와 조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듯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검증과정에서 1, 2, 3번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정리하고 조언을 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