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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pr 11. 2024

생애 처음으로 코엑스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초청을 받았다

오지랖. 순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코엑스에서 열린 대규모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초청받게 되었다. 주최 측과 수차례 미팅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준비한 끝에, 천여 명이 모인 강연장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협력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주최자는 별 다른 의도 없이 나온 얘기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그리고 제안 수락과 함께 지옥문이 열렸다.



첫 번째 관문은 강연이었다. 사실 외국계에서는 항상 대외적인 행사에 가장 먼저 발표자로 선정이 될 정도로 항상 청중의 호응이 좋았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발표 능력을 인정받아 마케팅 부서로 이동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계에서 주로 온라인 서비스 쪽에 몸담았던 터라, 대규모 오프라인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던 게 아쉬웠을 뿐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이다.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하겠다고 답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강연 당일 새벽까지 자료를 수정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두 번째 관문은 인터뷰였다. 주최자는 내가 그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온 이력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과거에 그에게 인터뷰 의뢰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작가님, 강연 전에 연사님들 중 가볍게 몇 분 인터뷰해 보는 것 어때요?"


세상에 결코 가벼운 인터뷰는 없다. 분명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런 내 고민을 알았는지 주최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딱 연사 3명만 해보죠. 질문 개수도 평소 하시는 분량보다 훨씬 줄여서 5개만 하는 걸로."


내 안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솟구치며 '오, 그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현실적이고, 계획적이고 이성적인 내 좌뇌가 나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이것 말고도 당장 작성해야 하는 기획서가 4건인데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본업이 따로 있다. 하지만 인터뷰 대상인 연사들을 보니 한번 솟구친 호기심을 다시 억누르긴 힘들었다. 그렇게 3명의 연사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답변을 그대로 받아쓰고 퇴고 없이 발행할 수 있었지만 장문의 인터뷰를 할 때와 똑같은 애정과 정성을 쏟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답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문장을 잘게 부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쉽게 표현하면 정육점에서 크게 썬 고기 한 덩이를 가져와 먹기 좋게 소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최종 소비자는 그들과 일면식도 없고 전문 지식도 없을 가능성이 높은 독자이기에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소화할 수 있는 문장과 표현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컨퍼런스 연사 인터뷰,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주최자는 최종결과물이 흡족스러웠는지 3건이었던 인터뷰를 6건으로 늘려주는 유연한 사고를 보여주었다. 결국, 주최자의 노골적인 칭찬에 넘어가 6명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단, 사전에 원고 확인이나 사후 수정은 없다는 조건을 걸었다. 주최자가 언론홍보를 오래 해본 사람이라 내 요청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동의했다. 다행히 수정 없이 강연자들의 높은 만족과 함께 인터뷰를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관문이었다. 코엑스 행사가 십일 정도 남았을 때였다. 주최자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작가님, 영어로 대화하는 거 괜찮으시죠?"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것을 아는 주최자가 다시 한번 나의 과거를 확인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다고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일을 만들지 않을 생각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네, 그런데 왜요?"


대답을 담백하게 '네'로 끝내거나 전화기를 끊었어야 했는데 이놈의 호기심이 '왜'를 붙였다. 그때 이 대화의 결말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현장에서 해외연사분 인터뷰도 해보시겠어요?"


"사석에서 일대일로요?"


"아뇨, 무대에 올라가서 좌담회 형식으로요."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할 때 본사 임원들이 오면 직원들을 대신해서 질문은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사전에 협의된 질문 외 즉흥적인 질문까지 던져서 인사팀을 당황시킨 적은 있지만 무대에 올라 장시간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동안 주최자는 끊임없이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주최자는 컨퍼런스 기획이 아닌 보험이나 차를 팔았다면 분명 판매왕이 되었을 텐데 그 역시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 같아 안쓰러웠다.


모리 타헤리포어 와튼스쿨 교수(좌),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해외연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가 쓴 책을 정독하고 서평까지 썼다. 청중이 궁금해하고 해외연사가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추렸다. 평소 자주 쓰지 않거나 발음이 어려운 영어 단어 대신 내가 현장에서 거침없이 뱉어낼 수 있는 영단어들로만 채웠다. 그렇게 강연 이틀을 남겨두고 혼자 질문지를 읽어가며 연습을 했다. 자주 뱉어볼수록 현장에서 그 어떤 변수가 있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다. 그 와중에 이제는 수신을 거부하고 싶은 주최자에게 전화가 왔다.


"작가님, 해외연사가 두 명인 거 아시죠? 다른 분도 해보는 게 어때요? 너무 무리면 제가 다른 분 섭외할게요. 그런데 일정이 촉박해서 다른 분 섭외가 될지 모르겠어요."


대화가 이상하다. 분명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내게 물어보지 않고 답을 내렸다.


'이건 질문인 건가? 요청인 건가? 독백인 건가?'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분 좌담회도 내가 할게요."


오지랖. 순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오지랖이 넓으면 그 안의 옷을 다 가리니 남들 앞에 나서서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참견하며 따지는 모양새가 이와 닮아서 나온 말이다. 지금 내가 한 행동이 오지랖의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난 예정에 없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무대에서 좌담회를 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하고 적절한 질문을 준비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 역시 노동자지만 사실 그의 전문 분야인 '노동 시장의 원리'와 발표 주제인 '앞으로의 AI와 자동화가 미치는 노동 시장'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지난 인터뷰를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중에는 14년 전 인터뷰도 있었다. 시험 준비를 충분히 하였다면 시험이 두렵지 않고 채점이 기다려진다. 인터뷰 역시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파악이 되었다면 인터뷰가 기다려지는 법이다. 결과적으로, 난 초조했고 긴장이 되었다. 당일에도 코엑스로 향하는 차에서 그에게 물어볼 질문을 읽고 또 읽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좌담회, ⓒ알바트로스 컨퍼런스


컨퍼런스 당일, 강연과 인터뷰, 좌담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청중들의 열띤 호응과 관심을 보며, 짧은 시간 동안 고군분투했던 준비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오지랖 넓은 결정이 초래한 고충이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낯선 영역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가치 있는 경험은 결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며, 그 속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삶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만끽하는 데 있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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