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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31. 2024

"자숙 말고 이참에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는 건 어때?"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 다른 일은 못 해"

"또 자숙?"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공인들의 '자숙 행진'에 심기가 불편해질 때가 많다.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 인플루언서, 사회운동가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들이 사생활 문제로 구설에 오르면, 어김없이 반성하는 척 모습을 감추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있을까? 자숙 뒤에 숨은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씁쓸함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사라졌다가 돌아오면 되겠지."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자숙 뒤에 도사린 계산된 심리가 아닐까.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 때까지 잠시 숨어있다가, 언젠가는 화려하게 복귀할 날만을 기다리는 것. 그들에게 자숙은 진정한 반성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행태의 근저에는 연예계 퇴출이 곧 커리어의 종말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깔려있다.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잃는 순간, 그들의 인생도 끝나버리는 듯한 태도인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들의 인생은 정말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는 순간 멈춰버리고 마는 걸까? 공인으로서 그간 누렸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은 그들에게 없는 걸까? 이 물음을 던지며, 우리는 공인들의 자숙 행태에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자숙'일까, 아니면 새로운 '직업'에 대한 도전일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유명 밴드 블링크182의 전 드러머였던 스캇 레이너다. 그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음악의 길로 들어서 블링크182에서 드러머로 활약하며 화려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그는 모두를 놀라게 하는 선택을 했다. 바로 경찰공무원이 된 것이다.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 다른 일은 못 해요."


이런 변명은 스캇 레이너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14살에 밴드활동을 시작해 어릴 적부터 음악 외에는 몰랐던 그가 1998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더 이상 블링크182의 멤버로 활동할 수 없었다. 이후 다른 밴드에 합류해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한 것이다. 매일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드럼을 연주하던 그는, 이제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치안 현장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스캇 레이너의 이야기는 "너무 늦었다" "새로운 걸 배우기엔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산산이 깨트린다. 그에게 음악은 인생의 전부였지만, 그의 인생은 음악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과감히 도전할 줄 알았다. 비록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도전정신은 공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중년의 가장부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어르신까지. 인생의 전환점에서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스캇 레이너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런 선택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스캇 레이너, ⓒblink-182 Italia  X 계정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공인이 아닌 삶, 이른바 '평범한 삶'을 낮춰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언론에서도 공인의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식의 보도를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편협한 시각이다. 공인으로 살았든, 비공인으로 살았든 모든 삶의 형태는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의미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선택한 삶에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임하는 자세가 아닐까.


스캇 레이너의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일에는 정답이 없으며, 그 누구도 그 선택을 폄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색으로 인생을 그려나갈 자격이 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살던 공인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평범한 이들도 말이다.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제는 '자숙'과 '복귀'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용할 때다. 공인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잊지 말자. 때로는 화려한 반짝임으로, 때로는 작은 불빛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건 우리 모두니까. 스캇 레이너처럼, 당신도 언제든 새로운 무대에 설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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