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공평 사이, 직장인의 권리와 기업의 현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로울까? 아니면 각자의 상황을 고려해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올바를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이 딜레마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공정성(Fairness)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고, 공평성(Equity)은 각자의 출발선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평등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듯 다른 이 두 개념의 차이는, 당신의 팀이 성과주의 조직이 될지 포용적 조직이 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리더들이 이 둘을 혼동한 채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같은 규칙을 적용한다고 모두에게 공정한 것은 아니다. 한 국내 대기업의 사례를 보자. 신입 채용 시 모든 지원자에게 동일한 영어 면접을 실시했다. 공정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해외 영업이 필요 없는 생산직과 연구직 지원자들도 영어 면접 점수로 당락이 결정됐다. 실제 업무 능력과 무관한 기준이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우수 인재를 탈락시켰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한 IT 기업은 코딩 테스트에서 제한 시간을 엄격히 적용했다. 장애가 있는 지원자가 시험 시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그 지원자는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것이 진정한 공정성인가?
반면 세일즈포스의 사례는 다르다. 2015년 CEO 마크 베니오프는 성별 임금 격차를 발견하고 300만 달러를 투입해 이를 해소했다. 단순히 '동일 업무, 동일 임금' 원칙을 적용한 것이 아니었다. 왜 여성 직원들이 승진에서 누락되고 낮은 평가를 받았는지 구조적 원인을 분석했다. 육아로 인한 경력 공백이 평가에서 과도하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협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이 초봉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장벽을 제거한 것이다.
맥킨지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성별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25% 높은 수익성을 보였다. 공평성은 도덕적 의무일 뿐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넷플릭스의 '키퍼 테스트'를 보자. "이 직원이 떠난다면 강력히 붙잡으려 할 것인가?"라는 잔혹한 질문으로 직원을 평가한다. 결과는 명확하다. 2023년 넷플릭스의 직원 1인당 매출은 280만 달러로, 구글의 170만 달러를 훨씬 웃돈다.
Y콤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스타트업에서 공정성을 추구하다가 망한 회사들을 수없이 봤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인재에게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이때 공정성은 사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골드만삭스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도 핵심 트레이더들에게는 파격적인 보너스를 지급했다. 외부에서는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한 투자은행 중 하나가 됐다.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의 에드가 샤인 교수는 "생존 불안이 학습 불안을 압도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기업이 생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전통적인 공정성 원칙보다 조직의 생존이 우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프란체스카 지노 교수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불공정성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직원들의 '도덕적 이탈'이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불만을 넘어 조직에 대한 적극적 해악으로 이어진다.
갤럽의 2023년 직장 참여도 조사는 충격적이다. 전 세계 직장인의 77%가 자신의 직장에 몰입하지 않고 있다.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불공정한 대우'다.
투명성을 만능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버퍼는 모든 직원의 연봉을 공개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초기에는 화제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봉 격차에 대한 불만이 오히려 증가했다. 조직심리학자 댄 애리얼리의 연구는 더욱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실제 불공정보다 '인지된 불공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투명성이 오히려 불공정에 대한 인식을 증폭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스탠포드 대학교의 제프리 페퍼 교수가 제시한 '공정한 불공정' 개념이 실마리다. 핵심은 불공정한 결정이 불가피할 때, 그 과정과 기준을 최대한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고객 중심"이라는 명확한 기준 하에 모든 의사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서나 직원들에게는 불리한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기준이 명확하고 일관됐기 때문에 조직 전체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딜로이트의 인적자원 트렌드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고성과 조직의 특징은 '공정성'이 아니라 '예측가능성'이다. 직원들은 완벽한 공정함보다는, 조직의 의사결정 패턴을 예측할 수 있을 때 더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프로스펙트 이론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절대적 결과보다 '상대적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인사 정책의 핵심은 절대적 공정성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보상이다.
사회심리학자 존 아담스의 형평성 이론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절대적 대우가 아니라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이다. 더 많은 책임과 성과를 요구받는 직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인식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말했다. "공정함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기여에 따라 대우하는 것이다." 테슬라는 극도로 성과 중심적인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직원 충성도를 유지한다. 기준이 명확하고 일관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공정하고 공평한 직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당신의 기업은 '공정한 불공정'을 실천하고 있는가? 전략적 필요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할 명확한 기준이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을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통하고 있는가?
답은 경영진의 용기에 달려있다. 위선적인 이상주의도, 냉혹한 현실주의도 정답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이 둘 사이에서 조직과 구성원 모두를 위한 최적해를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