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막 대해도 되는 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직장인 5년차, 남들은 그 정도 연차가 되면 신입일 때보다 더 편해진다는데 어째 내 회사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힘만 들고 월급은 그대로인지. 회사에 월급루팡들이 넘쳐나는데도 손 많이 가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일은 죄다 다 나에게 만 쏟아져 들어왔다.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면 능력을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어느덧 나는 시키면 군말없이 하는, 부려먹기 쉬운 직원이 되어있었다.
간이 콩알만한 소심한 성격이라 싫은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윗사람에게 말을 꺼내볼까 싶으면 나는 말하기 전부터 덜덜 떠는 사람이었다. 밖에서 만났으면 신경조차 안썼을 아저씨1,2 아줌마1,2였을텐데 여기는 회사였다. 직급에 따라 권력의 크기가 주어지고 먹이사슬이 결정되는 이곳은 나보다 높은 직급이면 부당한 업무 지시나 업무 외 괴롭힘도 공공연히 묵인 되는 곳이었다. 권력은 그 어떤 일에도 정당성을 부여했다. 모든 인간의 권리는 평등하다던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회사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자연스레 밖으로 관심이 쏠렸다. 매주 등산을 가기 시작했고, 러닝 모임에 가입했으며, 캠핑, 악기, 발레, 그림, 베이킹 일일클래스도 다녔다. 일주일 동안 쌓인 화를 풀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각종 모임을 다니며 불이 꺼지길 기다렸다.
1년 후 어느 날, 불이 꺼진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불이 꺼진 자리에는 하얀 재가 소복히 쌓여있었다. 살짝 안을 들춰보니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훅 와 닿았다. 더 깊숙히 손을 뻗어 부지깽이로 휙 휙 휘저으니 반쯤 타다 남은 까만 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재 안에 숨어있던 빨간 불빛이 고개를 들어 나를 째려보았다. 만약 바람이 불거나 그 바람을 타고 온 나뭇잎이라 들어오는 날에는 불쏘시개가 되어 활활 타오르기 딱 좋은 상태였다.
누군가 나 대신 답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취미활동을 통해 제2의 직업을 찾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의 경우, 취미활동에 몰두했던 이유는 어떻게든 다시 회사를 다녀보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보고 나서 알았다. 새 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색다른 경험으로 주말을 채워도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던 이유를… 건들기 무서워 애써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연락했던 지인들과의 연락을 하나 둘 끊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데도 이리 용기가 필요하다니. 내 마음이 무슨 말을 터뜨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살면서 처음으로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했다. 점심시간마다, 밥을 먹는 대신 서점으로 향했 다. 왠지 책 속에는 답이 있을 것 같았다. 딱히 물어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에게는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인 것도 있었다. 그리고 매일 서점에 가서 얻은 경험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오전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혼이나 잔뜩 풀이 죽은 상태로 서점을 들어가는 날에는 [미움 받을 용기] 라는 책이 내 눈앞에 떡 나타났다. 워낙 베스트셀러라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책 이었는데 그날따라 눈에 확 띄었다. 제목만으로도 힘을 받았다. 우연이었을까.
너무 힘들어서 지금 나보다 힘든 사람이 과연 있긴 할까 는 생각이 들때는 [스물 아홉 생일, 일 년 후 죽기로 결심 하다] 라는 책을 만났다. 서점에는 나보다 앞서 경험을 하고, 먼저 고민해본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책들로 넘쳐났다. 마치 서로 나를 위해 앞다투어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듯이.
결혼과 불안정한 나의 미래 그 사이에서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밖은 지옥이야. 퇴사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말이다. 그리고 퇴사를 단념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말이기도 하다. 이 말에 빠져있다보면 그래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지 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올라온다. 회사 업무도 처음보다는 익숙해졌고 승진 욕심 크게 부리지 않으면 하던 일 하면서 월급 받아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얘 낳고 그렇게 사는게 인생이지라는 인생 계획으로까지 이어진다. 거기다 주위에 하나 둘 늘어가는 결혼한 지인들이 이런 생각을 더 공고하게 해준다. 그래 굳이 별종이 되지 말자.
문제는 내가 남들 사는 대로 살면서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장 만나 는 사람도 없는데 결혼을 예상하는 것은 오바고,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자는 생각을 갖기에 나는 내 인생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결혼과 비혼 사이에 있는 나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었다. 그냥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 한 몸 살아있는 동안 세상을 위해 쓰임새 있게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후배의 퇴사 그리고 미국배우에게 뼈맞고 운날
나는 비겁했다. 이런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불안했다.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취업 준비할때는 취준생이라는 신분이라도 있었는데 이 나이에 이직할 곳을 정하지도 않고 퇴사하면 뭐라고 불러야 되나 이제 진짜 30대 백수가 되는 건가 라는 생각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수로써 가르쳤던 후배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사한지 1년밖에 안된 후배도 똥인지 된장인지 판단이 빠른데 나는 이제까지 뭐하고 있었던거지?
그때부터 퇴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퇴사는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는데 내 인생에도 진짜 퇴사라는 이벤트가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 달전까지만 해도 첫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다녀야 하는 줄 알 정도로 안정을 추구해왔던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 동안 회사를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을 되돌아보았다. 정규직, 연봉, 회사의 네임벨류… 이제 더 이상 이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만들어 나갈 삶에서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니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은 회사원, 공무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온 피터 딘클리지 라는 미국 배우가 있다. 이미 퇴사를 했음에도 가끔은 흔들릴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마치 신부가 주기도문을 외우 듯, 피터 딘클리지의 연설을 본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기 전, 그가 처한 상황과 느낀 심정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워낙 유명한 배우이기에 누군가에는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겠지만 나에게는 용기를 준, 자신이 얻은 삶의 지혜를 세상 밖으로 공유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누군가가 왜 퇴사했냐고 물어보면 앞으로는 이 글을 보여줄 생각이다. 이래서 저래서 퇴사했다 라는 말하기가 귀찮다. 이제 나에겐 과거의 일이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