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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Jan 20. 2019

할머니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나이 드는 것이 무서운 적은 없었다. 하기야 스물일곱 나이에 벌써 "나이 드는 게 무서워."라고 말했다면 비웃음이나 샀겠지만, 어쨌든 나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았다. 농담 삼아 '우리도 이제 늙어간다'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리거나,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며 '좀 더 많이 놀걸' 하며 후회한 적은 있었어도 말이다.

나는 언젠가 맞이할 나의 서른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싶었다. 20대와는 다른 세계를 탐험하게 될 30대를 기대하고 싶었다. 또한 나는 언젠가 맞이할 나의 마흔도 기뻐하고 싶었다. 그즈음이면 직접 출판사를 차려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고령 친가에 다녀왔다. 대구에 아빠의 동창 모임이 있어 내려가는 김에 따라간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대략 아흔 번 정도의 사계절을 보낸 친할머니가 며칠 전 치매 중기 판정을 받았단다.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했던 할머니가 치매, 그것도 중기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밤이 되면 빛도 들지 않는 시골집 풍경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한 눈에도 알 수 있을 만큼 몸이 깡말라 더욱 왜소해져 있었다. 치매라는 게 정말인지, 시골집에 짐을 풀고 저녁 즈음 모임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아빠를 서너 번 정도 찾곤 하셨다.


그날 밤, 할 거라곤 챙겨온 책을 읽거나 재미없는 TV 채널을 돌리는 게 전부였던 나와 언니는 일찍이 잠에 들고자 불을 껐다. 밤잠이 없는 할머니는 우리가 불을 끈 후에도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산하게 몸을 움직이셨다.

그러다가 문득 장롱을 열어 두꺼운 이불을 한없이 끌어다 언니와 내게 덮어 주었다. 춥지 않다고, 괜찮다며 할머니를 말려도 당신은 이불이 너무 얇아 보인다며, 자꾸만 우리에게 이불을 덮어 주셨다. 나는 무거운 이불에 파묻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머리맡에 내려놓고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눈으로 좇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잠에 들지 못하셨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딸들에게 이불을 몇 개씩 가져다 덮어 주고서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발치에 있는 이불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때때로 낡은 시골집 바닥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어 모으기도 했다. 삭 삭, 오래된 장판과 건조한 손바닥이 마찰하는 소리를, 나는 눈만 깜빡이며 귀에 담았다.

모든 일, 손녀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방바닥의 먼지를 청소하고 담배를 한 대 피우는 일까지 모두 마친 할머니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제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커다란 유리창을 겨우 적시며 들어오는 새벽빛에 까만 할머니의 실루엣이 비쳤다.


문득 오늘과 같은 밤이 어제도 그제도, 몇 주, 몇 달, 몇 년 전부터 계속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밤은 손녀딸도 없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바닥을 쓸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은 채 밤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해가 뜬다고 하여 무언가 색다른 날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날 보았던 할머니의 실루엣, 어둠 속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그 모습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일주일 내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문득문득 그 모습이 떠올랐던 걸 보면.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다가도, 사무실에서 물을 따라 마시다가도, 퇴근길 지하철 환승역을 바쁘게 걷다가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한평생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자신을 돌볼 새도 없었을 할머니가 이제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골집에서 밤을 지새웠으리라 생각하니 두려운 감정이 물밀듯 몰려왔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언젠가 나이가 들면 나 역시 어둠 속에 앉아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게 되는 걸까. 차곡차곡 쌓아둔 오랜 기억을 하나씩 태워 보내며.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서, 해가 진 후에야 집에 돌아오는 바쁜 하루를 보내도.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여행을 떠나고, 노래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결국 나도 먼 훗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혼자 남으면, 빛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밤이 가기를 기다리게 될까.


그날 보았던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 '덧없음'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남았다.

삶의 끝자락이 그렇게 희미하고 외롭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목구멍 안쪽이 콱 막힌 듯한 먹먹함을 느낀다. 항상 '한 번 사는 거, 후회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해보면서 잘 살아야지' 생각했던 가치관이 길을 잃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이 드는 것이 조금 두려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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