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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Mar 17. 2019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한다

혼자서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외롭지 않아? 나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여행은 혼자 못 가겠어."


사람들은 때때로 나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을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도 마냥 외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꼭 긴 시간 동안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고작 사나흘의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외로움을 느끼곤 하니까.


특히 처음 떠난 나홀로 여행에서 느낀 외로움은 짧은 인생 동안 느껴 본 외로움 중 가장 크고 무서운 것이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던 2012년의 겨울에, 아직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나는 수능을 보기 전 꿈꿔왔던 대로 혼자 제주를 향해 떠났다. 그렇게 떠난 여행의 첫날은 모든 순간이 지나치도록 외롭고 쓸쓸했다. 처음 겪는 혼자만의 겨울 바다가 지나치도록 차갑고 시렸다. 심지어 첫날 숙소로 잡은 게스트 하우스에는 다른 여행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늦은 밤, 불을 끄고 잠에 들기 위해 누운 낯선 침대에서 나는 혼자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남은 사나흘의 여행이 너무나 길고 두렵게 느껴졌고, 방안을 가득 채운 조용한 어둠이 외로워 견딜 수 없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첫날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나니 다음 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하고 있었다. 생기가 넘치는 낮 동안은 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밤이 되고 잠에 들 시간이 오면 어느샌가 외로움은 덩치를 한껏 부풀린 채 "나 사실 계속 여기에 있었어"라고 말을 걸어온다. 좋은 풍경을 소중한 사람과 나누지 못할 때의 기분, 맛있는 걸 먹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오늘 하루 일을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외로움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외로운 고요함이 좋았던 작년, 대만


그러나 때때로 외로움은 혼자만의 여행에서 좋은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말이 없는 외로움은 그저 내 곁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뿐이다. 바닷가에서 노래를 틀어 놓고 30분, 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외로움은 내게 "이제 그만 일어날 시간이야"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낯선 길을 걷다가 문득 현실의 고민이 덮쳐와 뜬금없는 눈물을 터뜨려도 "갑자기 무슨 청승이야?" 하고 비웃지 않는다. 그의 존재를 때론 못 견뎌 하기도, 즐기기도 하면서 여행은 흘러간다.

아마 처음 떠났던 나홀로 여행에서 외로움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오히려 혼자만의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그때 느꼈던 외로움이 그리운 순간도 있으니까. 누군가 내게 "혼자 여행 가면 외롭지 않아?" 하고 물을 때 "외롭지, 당연히. 근데 외로운 것도 좋아." 하고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한다.

그는 때때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동반자이며, 최고의 여행 메이트가 되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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