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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Jun 16. 2019

그러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쓰겠다고


매주 주말마다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가 글을 쓰던 날이 있었습니다. 지금보단 조금 더 꾸준했고, 글을 쓰는 데에 망설임도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글을 쓰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누군가가 암 투병을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병마의 기습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는 걸 보았던 날부터였습니다.

'글 쓰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작아져만 가는 희망의 옷자락을 붙잡고 강인한 척, 흔들리지 않는 척 표정을 다듬는 이들을 보며 이마저도 결국은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게 된 탓이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제자리에서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을 옆에 두고 한가로이 글을 쓴다는 게 전부 쓸모없는 짓인 것만 같았습니다.

한번 손을 놓게 된 글쓰기는 결국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을 쓰더라도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무엇을 써내더라도 하늘 위에 동동 떠 있는 뜬구름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손을 놓은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습니다.



오늘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아주 별거 아닌 계기 덕입니다. 정말 별건 아니고, 며칠 전 인터넷을 하다가 본 예능 프로그램의 캡처가 글쓰기의 두려움을 조금 덜어 주었거든요. 그 방송에서 한 스타일리스트가 얘기했습니다.

"나도 매일매일 안 빼놓고 한 줄씩은 꼭 일기 써."

그 말에 다른 패널이 한 줄 일기를 몇 가지만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단에는 마치 마음을 울리는 한마디를 기다리는 듯, '과연 어떤 한 줄 명언들이 있을까?'라는 자막이 떠 있었습니다. 곧이어 스타일리스트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년이 나한테.. 지랄을 하였다. (오늘의 일기 끝)"


그 한 줄을 보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졌습니다. 기대와 달랐던 한 문장이 주는 충격이 크기도 했고, 그 한 줄조차 쓰지 못해 흘려보낸 내 지난 3개월이 떠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꼭 '의미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뭘 써야 할까 글감을 고르고 골라도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어 왔거든요. 왜 꼭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줘야 하고, 어떤 울림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전문 작가도 아니고, 어디에 투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쓰겠다고.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쓰겠다고.'

그런 마음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작가도 아닌 게 글 몇 자 쓰는 걸 두려워하는 게 더 웃긴다고,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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