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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Jul 07. 2019

나는 매일 더 사랑스러울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청바지에 검은 후드티만 걸치고 다녔다. 머리는 항상 짧은 단발, 앞머리를 덥수룩하게 내리고는 어딘가 항상 주눅이 든 채였다. 스스로가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외모, 뭘 엄청 먹어 치우는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투실투실 오른 살, 낮고 작아 남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목소리와 사교성은 얻다 갖다 팔아 버린 듯한 성격. 내가 봐도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였다. 꾸미지 않은 게 아니라 꾸밀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주제도 모른다'며 욕하지 않을까 겁이 나서. 검은 후드티에 나를 파묻어 두는 게 분수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욕할 게 무서워 그 흔한 치마 한 번 입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불쌍하고 애처로운 마음에서부터 빠져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별반 큰 계기도 없이 혼자 눈물을 짜고 고민하며 천천히 벗어났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 설령 누군가가 겉모습만 보고 나를 욕한다고 해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교양 없는 상대방의 인성이 문제라는 것, 그리고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러한 사실들을 마음 깊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일까, 남들에게 "많이 예뻐졌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보다 "많이 밝아졌다"라는 칭찬을 받는 게 더 기뻤다. 예뻐졌다는 말은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밝아졌다는 말은 웬만큼 노력해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옷 하나 걸치는 것처럼, 액세서리 하나 더하는 것처럼 겉으로 티가 나는 게 아니니까.


혼자 마음속으로 전쟁을 치르던 끝에 자기애를 조금씩 쌓아갈 수 있게 된 어느 날이었다. 학교 과방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내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근데 너 뭔가 밝아진 것 같아."

옆에 있던 다른 선배는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선배는 여전히 "몰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뭔가 그냥 밝아진 것 같은데?" 하며 웃어 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들은 말 중 가장 벅차고 기쁜 칭찬이었다. 그 한 마디에 모든 지난날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시간들을 이렇게 '옛날 일'이라며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외출하기 전 거울을 보며 "오늘 좀 예쁜데?" 하고 뻔뻔하게 이야기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남들 다 보는 브런치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런 글을 올릴 수도 있을 만큼. 여전히 소심하긴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어둡다는 뜻은 아니므로 괜찮다.



나는 매일 더 사랑스러울 것이다. 열등감의 늪을 혼자서도 잘 헤쳐나왔으니까. 우울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금세 빠져나올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더 사랑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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