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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Nov 01. 2020

"그거? 거지 장학금."

누구도 내게 가난을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게 할 자격은 없다

대학교 재학 시절의 이야기다. 등록금이 빚이 되어 돌아오는 세상, 나는 아주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거의 모든 학기에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때도 있었고, 전액을 받지 못해 일부만 납부할 때도 있었으나 그나마도 몇십만 원 선에서 부담이 가능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그때 그 학기에는 전액 지원이 되지 않아 등록금 일부를 내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쿰쿰한 냄새가 가득한 과방에서 공강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학교 어플에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등록금 내역서를 보니, 국가 장학금 외 남은 금액이 듣도 보도 못한 장학금으로 차감되어 있었다. 학교를 몇 학기나 다녔으나 난생처음 본 장학금이었다. 이게 뭐지, 잠시 고민했으나 마침 옆에서 같이 공강 시간을 때우고 있던 과대가 있어 별 생각 없이 장학금에 대해 물었다.


"XX야, 다솜 장학금이 뭐야?"


어딘가에 정신을 팔고 있던 과대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툭 대답을 던졌다.


"그거? 거지 장학금."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짧은 단어 하나에 A부터 Z까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소득분위가 낮은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이겠구나. 쟤는 장학금을 받는 애들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훗날 찾아 본 바에 의하면 교내 장학금으로, 국가장학금과 연계하여 소득분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장학금이었다. 아마 그 친구는 과대였던 덕에 이러한 제도를 잘 알고 있었으리라.)

사실, 어찌 보면 부끄러운 말이기도 하나 나는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가난을 실감해 본 적이 없다. 배를 곯거나 돈 때문에 사고 싶은 걸 사지 못하거나 등록금 걱정을 해 본 적도 없다. 소득분위는 낮지만, 가난을 논하기엔 내가 가진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 모든 게 부모님의 노력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딸들이 가난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 달 내 쓸 돈을 공들여 분배하고, 적은 돈이나마 벌어 보려 마음고생 몸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 덕분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온 부모님의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내 모습이지, 부모님의 노력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을 부끄러워한 적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구도 내게 가난을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게 만들 자격은 없었다.

'얘는 내가 이걸 왜 물어보는지 생각을 못 하나?' 그런 생각이 들자, 태연한 얼굴로 '거지 장학금'이라는 말을 던진 과대에게 숨길 새도 없이 대꾸가 튀어나갔다.


"그거 내가 받아서 물어본 건데?"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내 말에 과대는 심히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태연한 척하면서도 숨기지 못하는 당황스러움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얼굴에 나는 더 이상 무슨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친구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 테니까.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조금이라도 깨달아 주길 바랐다.


아이러니한 것은 '거지 장학금'이라는 말을 했던 과대가 바로 지난 학기, 자신의 부모님이 선산을 가지고 있어서 국가 장학금을 못 받는다며, 국가 장학금 지급 방식이 '불공평'하다고 열변을 토하던 아이였다는 점이다. 거의 매 학기 국가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충당했던 나는 그 순간에도 입이 썼다. 그 쓰잘데기 없는 땅조차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 안정적인 수익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친구는 정말 모르는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가, 나 역시 다른 친구의 속사정은 잘 모르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을 뿐이다.


소득분위가 낮은 학생들에게 주는 국가 장학금은 본인이 받지 못한다며 열을 냈으면서, 똑같이 소득분위가 낮은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은 '거지 장학금'이라고 생각하다니. 정 억울하면 너도 거지 하든가!

열변을 토하던 그 애와 거지 장학금 운운하던 아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어찌나 우스웠는지 모른다.



그 짧은 대화가 끝난 직후, '거지 장학금'이라는 단어에 부끄러워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너였음에 안도했다. 아마 그때 내가 그 말을 수치스러워하고 숨기려 했다면, 지금까지도 그 순간의 나를 부끄러워했을 테다. 나는 가난을 딸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한 부모님이 부끄럽지 않으니까.


내게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도 내게 가난을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게 할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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