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해보자. 잠시 마흔 중반의 부모가 되어보자.
당신은 이제 스무 살이 된 딸을 둔 엄마다. 당신의 딸 '서윤'은 친구 '민서'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상상치도 못했던 운명과 맞닥뜨린다. 항상 예민한 촉을 세웠던 당신이지만 그날만큼은 어떠한 예감도 들지 않았다. 당신이 한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xx병원입니다. 서윤 양 어머님 맞으십니까? "
당신은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어깨를 반쯤 드러낸 채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간호사의 얘길 듣던 중 결국 주저앉고 만다.
딸 서윤이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갓 대학에 입학한 '건우'는 친구들과 호숫가에서 맥주를 많이 마셨다. 한 친구가 만류했지만 고작 맥주 정도로 차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 건우는 오래된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술에 취한 건우가 졸았던 것은.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두 명의 목숨을 빼앗은 살인자가 되었다. 그는 순순히 체포되었고 자신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지만 그가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신은 처음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가슴 한쪽이 찢겨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딸의 주검을 확인했을 때 당신은 숨이 넘는 것 같았고 단 하루도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살인범은 용서 대신 선처를 구했지만 재판은 그에게 22년형이 내렸고 당신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다. 하지만 당신의 분노와 살인범에 대한 증오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딸이 살아오는 것뿐이었으니까.
딸이 절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을 때 감옥에서부터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살인범의 편지였다. 살인범은 늦었지만 당신에게 사과했다. 당신은 편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터 저나 오는 분노를 눈물로 삭혔다. 어쩌면 평생 살인범을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조금 뒤였다.
당신은 찢어버린 종이 조각들을 다시 주워 들었고,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당신은 마침내 펜을 들었다.
편지를 쓰기 전까지 건우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편지를 쓰며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지었는지 인지했다.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뒤로 숨을 수 없다는 사실도. 살인범 '건우'는 답장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편지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지를 썼고 답장이 왔다. 소녀들의 부모 중 한 명으로부터.
당신은 건우와 그의 가족들,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가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성실한 대학생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내가 그를 미워한다고 딸이 돌아오진 않는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은 재판부에 그를 위해 선처를 구했다. 아니 당신 자신을 위해 용서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여 건우의 형량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건우는 여러 차례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 사과를 했고 앞으로 속죄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축복입니다."
이것은 2002년 플로리다에서 벌어졌단 실제 이야기다.
르네는 평생을 증오 속에서 사는 대신, 딸 메건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했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제 그녀는 고등학교를 찾아가 한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나는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