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by 신카이 마코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왔다.
개인적으로 그의 앞선 장편 영화들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공업적이고 인위적인 캐릭터와 정리되지 않은 서브플롯이 특히 그러한데,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미 (구도나 특유의 광원효과)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기 전 관전 포인트도 바로 그것들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줄 것인지, 한편으로 기존작의 아쉬운 스토리 전개가 이번엔 어떻게 펼쳐질지.
마코토 감독의 작품은 대개 아름다운 광원효과와 배경 묘사로 영상미가 좋다는 평을 받곤 한다. 물론 이번 작품도 그러했지만, 기존 작품에 비해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면 바로 '현실감'이었다.
이번 작품은 대부분 주인공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밥을 먹고, 걷고, 이동하고, 대화하는 장면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가만히 입만 움직이던 고전적인 2D 애니메이션의 동작이 아닌, 실제 사람이 움직이듯 세세하고 디테일한 동작들을 보여준다. 또 몇몇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장적이라도 한 듯 물리적인 움직임,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그런 장면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장면들과 또 다른 시각적 쾌감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첫 여정인 에히메 현의 민박집에서 스즈메와 치카가 한 방에 누워 대화하는 장면은 정말 디테일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구도나 카메라의 움직임도 영화의 그것과 같았다. 웬만한 드라마 보다 실험적이고 다양한 구도가 등장한다.
전작 '날씨의 아이'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문제는 알겠는데, 당신이 제시하는 답은 뭐야?'였다.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는 감독의 특성 때문에, 주인공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번작도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명확히 전달했다. 일본 문화를 알아야만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작위적인 캐릭터는 있었다. 소타의 친구로 등장하는 '세리자와 토모야'는 스즈메를 문으로 데려다 주기 위한 셔틀로 작동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가 왜 그렇게 협조적인지 전혀 와닿지 않는다.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 많은 분량이 생략되어 생긴 문제라고 한다.)
+ 스즈메가 소타를 위해 행동하는 이유도 딱히 명확하지 않아 그저 얼빠처럼 묘사되는 점도 아쉬웠다.
작중 문단속을 하는 이유는 미미즈라 불리는 지진 괴물을 봉인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해당 장소의 소중한 기억, 목소리를 듣고 힘을 빌려야만 한다.
이것에 더해 스즈메는 소타를 구하기 위해 문의 저편으로 건너가 과거의 자신을 만나 위로한다.
또 휴게소에서 스즈메와 그의 이모인 '이와토 타마키'와 말다툼을 하고 또 화해하는 과정까지.
결국 스즈메가 하는 일의 모든 것은 감독이 생각하는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마주하고 또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의 가치를 기억하는 것.'
살면서 누구나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아프더라도 소독하고 꿰매어 치료하기도, 어떤 이는 알아서 낫겠거니 내버려 두기도 한다. 많진 않지만 일부러 상처를 덧내 무뎌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그 상처를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일기를 쓰던, 상담을 하던, 창작물로 남기던 어떤 식이로든 마주한 뒤에야 소독을 하고 꿰매고 약을 바를 수 있다.
감독도 이번 작품을 통해 재해로 인한 일본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영상미도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로 실망했던 내 생각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일본 자국 내에 분위기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도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라 느껴진다.
감독의 색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이런 작품을 양지로 끌어올려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의 그런 고집은 배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창작물을 대하는 방식은 '체험'에 가깝다. 작품 속의 세계를, 상황을, 대화를 대리 체험하는 것.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변화하는 것.
일단은 'melt's review'라 이름 붙인 이 시리즈는 그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시작하는 시리즈이다.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전시 등 가릴 것 없이 리뷰를 남겨보려 한다.
기록은 그것을 남기고 지속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