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무슨 일을 하던 초반 성장이 매우 빠른 편이다. 이것저것 관심도 많고 시작하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갈고닦아야 하는 시기는 견디지 못해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게 추월당하기 일쑤이다. (다행히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끈기와 우직함 대신 아이디어와 순발력이라는 무기가 있다.) 어쨌든, 나는 이것이 '컴포트존은 넓지만 그 밖을 향한 장벽이 매우 높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그 컴포트 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지난 글의 요지였다. 하지만 이는 전제조건에 불과하다. 벼룩을 가둬둔 병뚜껑을 열었다고,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을 바라본다고 그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야 천장을 열었다.
포텐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잠재능력이 폭발적으로 발휘되는 순간을 말한다. 성공한 사업가, 예술가, 운동선수 등, 포텐이 터졌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천장, 즉, 한계를 두지 않는 것. 두 번째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하는 꾸준함, 혹은 습관. 마지막으로는 고통스러운 훈련이다. 나는 오늘 그 고통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학습곡선은 대개 완만하게 시작해 급성장, 그리고 다시 슬럼프 구간에서 완만해지는 S자 형으로 이뤄진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은 처음에 급성장, 그리고 슬럼프 구간에 완만해지는 형태를 많이 겪었을 것이다. 이 슬럼프 구간을 깨려면 더딘 구간을 겪어야 한다. '낙담의 골짜기'라고 부르는 노력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는 그 구간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구간을 깬 적이 없었다. 처음 말했듯 나는 초반에 노력대비 성과가 잘 나오는 편이다. 그러니 낙담의 골짜기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 쉬운 구간만을 꾸준히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처음으로 그 구간을 돌파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돌파'했다'기 보다는 돌파'하는 중'이다.)
최근, 나는 작업 의뢰량이 늘었고 그에 맞춰 금액도 높였다. 처음 금액을 올렸을 때만 해도 나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처음 영상을 만들 때보다 실력도 늘었고 무엇보다 일 자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일정이 빠듯한 의뢰는 맡은 지 3일 만에 끝내기도 했다. 행복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뢰량을 최고로 늘리면 '이론상' 한 달에 천만 원대의 수익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졌다. 기획사나 유통사, 가구 브랜드 등 개인이 아닌 사업자나 기업에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B2C에서 B2B 형태로 변해가는 중이랄까.) 기존 의뢰인들은 인디 뮤지션이나 모델 등 개인이 대부분이었고 결과물의 기준치가 낮은 편이었다. 물론 그들도 그들만의 기준치가 있었으나 나 스스로의 기준치가 월등히 높아 그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았기에 '상대적으로 낮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기업에서 맡기는 경우, 내부에서 기획 단계를 충분히 거칠 것이고 이전 프로젝트가 레퍼런스가 되기도 할 것이다. 프로젝트 수로만 따지면 나보다 경험이 많은 클라이언트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부담감과 두려움에 작업이 망설이기도 했다. 의뢰를 받더라도 예전 작업만큼 수월하게 진행할 수도 없었다. 마치 처음 외주를 받던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성장할 때마다 이런 순간은 매번 찾아올 것이라는 걸.
한계 없이 도전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에 따른 성장의 고통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무의식은 도전과 성장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성장한다는 건 영원히 오르막을 오른다는 것이다. 고통이 끝나는 순간은 내가 평지나 내리막을 걷는 순간, 성장을 그만두는 순간일 것이다. 이 당연하고도 뻔한 논리를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 나는 그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는 것은 무의식을 향해 '더는 피할 수 없으니 협력하라'라고 새겨 넣는 것이다.)
나는 무한히 성장한다. 그리고 성장통은 멈추지 않는다.
두렵지 않다면, 고통이 없다면 성장하고 있지 않은 것이기에
나는 기꺼이 그 두려움과 고통을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