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유일한 운동은 러닝이다.
5년 전, 러닝 앱의 가이드에 따라 2km를 달리고 난 뒤 난생처음 '더 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동안 전혀 달리지 않았던 기간도 있었지만 여전히 러닝을 하고 있고
몇 년 전부터는 10km 코스이지만 마라톤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인들 중에는 꽤 잘 달리는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러닝크루나 커뮤니티를 보면 범접하지 못할 기록들을 수 없이 보게 된다. 나의 최장 기록인 10km를 매일 달리는 사람도 많다. 페이스(속도)도 나보다 더 좋다. 그럼에도 러닝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에 만족해 그 기록을 깨려 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대부분의 것들이 이런 식이다. 초보자 레벨에서는 일취월장하지만 꾸준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뒤처지게 된다. 누군가는 다양한 것들을 금방 익힌다며 부러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저 컴포트존이 남들보다 넓을 뿐, 그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던 것에 불과했다. 컴포트존 밖에서 마주 할 '실패'가 내 세상이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여유 있는 척, 뭐든 잘하는 척 팔짱을 끼고 서있을 뿐이었다. 서툴던 이들이 꾸준함으로 나를 추월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그렇게 30년을 보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에서 모든 것을 직접 하다 보니 남보다 못하는 일이 넘쳐났다. 대부분이 내가 '하기 싫은 일'이었다. 남 보다 못하는 일이니 하기 싫고, 그래서 하지 않았던 일.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해야만 하는 일. 부딪히고 실수하고 사고 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그 일들도 꽤 잘하게 되었다. 비로소 제대로 배워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년 차인 올해, 나는 작업 단가를 올렸다. 포트폴리오와 퀄리티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의뢰의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높은 단가만큼이나 큰 규모와 높은 퀄리티를 요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졌다. 기획사나 레이블에서 오는 문의도 생겼다. 금액과 실력에 맞게 고객층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가짐은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 몇 건은 아직 내기 버거운 작업이라 느껴 거절하기도 했다.
기업은 직급과 역할에 따라 일의 한계가 정해진다. 하지만 혼자 일하는 사람은 내가 마음먹는 대로 한계가 정해진다.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누구랑 할 것인지,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정해진다.' 내게 의뢰가 들어왔다는 것 타인에게 인정받았다는 의미인데도, 스스로 한계를 긋고 성장의 기회를 놓쳤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컴포트존에서 벗어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어떤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당심은 머나먼 조상으로부터 한 대도 끊임없이 이어진 존재이다.”
영상 속 조던 피터슨 교수의 이 말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그것은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생물이 탄생한 이래 얼마나 많은 재해와 전투와 전쟁과 정치가 있었을까. 그들의 생존으로 축적된 모든 승리의 유전자가 내 안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유전자는 어항 속 물고기들이 그러하듯 평소에는 잠겨(lock) 있다. 그러다 그것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풀려나는(unlock) 것이다. 어항 밖 세상이 그러하듯 그 상황은 대부분 극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나는 그 상황으로 나 자신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일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내일 당장 넷플릭스에 납품할 영상을 만들라고 해도 흔쾌히 맡을 것이다. 전 세계 극장에 걸릴 영화를 만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한계가 없다고 스스로를 정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신청을 했다. 그 화면을 캡처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 모든 지인들에게 인증까지 했다. 나는 스스로도, 대외적으로도 '풀코스 마라톤 참가자'가 되었다. 그날 저녁, 약 2주 만에 러닝을 했다. 12km. 신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