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마스킹테이프처럼만 부탁해
대학 졸업 후 조교를 할 때 나보다 한 살 많은 일어일문학과 조교 언니에게 일방적으로 혼난 적이 있다. 누군가 잘못 전한 말로 그 언니가 찾아와 다부지게 한 바탕 한 후 돌아갔다. 손이 덜덜 떨렸던 나는 들고 있는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 뜨려 산산조각 냈다. 많이 놀랐던 것 같다. 근 한 달간 학교 식당에도 출입하지 않고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암흑 같은 새벽, 학교에 도착해 업무공간에 앉아 있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온순한 내가 그럴 리 없다는 걸로 조교들 사이에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정말 질려 버렸다. 공부도 접고 조교도 접어버리려 교수님과 상담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 교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또 생겨.
여기를 벗어나도
마찬가지야.
참고 버텨.
잘 버텼고, 시간이 지나며 오해는 풀렸고 사과도 받았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래갔다. 조용한 성향의 나는 더 거북이 등껍질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그 뒤로도 살다 보니 자주 꼬인다. 인간관계 말이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지만 모든 시간을 혼자서만 지낼 수는 없으니까 어쩌다 어울리는 관계들이 가끔 꼬일 때가 있다.
사람에게 치일 때는 집에서 책을 보고, 음악을 눈물 날 때까지 듣다가 에라 모르겠다 누워 잔다. 그럼 다음 날 아침 다시 새 날이 되어 있고, 새로운 용기로 충전되어 있기 마련이니까.
마스킹테이프와 인생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기록을 하면서 ‘아, 이 녀석 쓸모 있군’ 하고 자주 느끼는 물건이 마스킹테이프다. 요물이다. 글씨만 있어 허전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무심하게 마스킹테이프를 쭈욱 찢어 붙여두면 조금 다른 느낌이 난다. 기록 처음부터 마스킹테이프를 염두에 두고 써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마스킹테이프를 붙이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더러 있다. 안 붙인 것만도 못한 상황이 생기는 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요즘 마스킹테이프의 점착력은 매우 실용적이어서 뗀 자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깜쪽같이 떼어지기도 한다.
내 인생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 오늘 좀 별로다 그러면서 마스킹테이프 떼어내듯 쭈욱 잡아 뜯고 새 마스킹테이프를 붙이듯 새로운 사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생각을 하면 될 텐데. 인생이란 그렇지 않아서 잘 살아야 한다. 두 번은 어림도 없지.
마음이 복잡한 날은 마스킹테이프라도 공들여 붙이려 애쓴다. 나에게 마스킹테이프는 상징적인 의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내 마음의 생채기를 약효도 없는 문구점 ‘반창꼬’ 마스킹테이프로 덧대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다. 잘 붙여진 날은 이걸로 됐지라며 마음의 위안도 얻고. 충전도 된다. 제발 내 인생아. 마스킹테이프처럼만 해 주렴.
*여름날 모기 물렸을 때 마스킹테이프 쭈욱 잘라 잠깐 붙여보라. 10분 지나면 간질거림이 사라진다. 낫는 건 아니다. 다만 공기차단으로 덧날 일은 방지해 준다. 꼭 해 보시길.
TIP.
-마스킹테이프는 폭, 전체 길이가 다양하다. 가격은 3000-15,000까지 다양하다.
-다이소 마스킹테이프는 저렴하지만 점착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잘 안 붙는 경우도 있다
-마스킹테이프가 이쁘다고 바로 사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앞으로 구매할 마스킹테이프와의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