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때 몰랐던 살면서 놀란 일본 이야기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후쿠오카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의 가까운 거리다. 나는 첫 일본생활을 시작한 후쿠오카에서 거주할 당시 취직 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한국에 갔을 정도였는데, 한국과 일본은 거리도 가까웠고 그만큼 항공료도 저렴해 부담이 없었다.
동북아시아에서 같이 복작복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일본은 한국에게 먼 나라로도 불린다. 어쩜 이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각국의 사람들이 서로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듯 다르고 하다못해 먹는 것, 입는 것도 비슷한 듯 다른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살기 전에 이미 여행으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3번의 여행에서는 여행자의 기분이었어서 그런지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에 대해서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막상 살아보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다르구나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평생을 경기도민 뚜벅이로 살아간 나에게 외출의 필수 조건은 짐을 줄이는 것에 있었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한국에서는 지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가방 무게를 줄이고자 지갑은 없이 카드 지갑 하나만 들고 외출했다.
체크카드 하나랑 붕어빵 사 먹을 돈 현금 천 원만 들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한국이었다. 일본은 아직도 현금 사용이 일반적이다. 나는 일본에 와서야 지폐를 넣을 수 있는 장지갑을 구매했다.
일본의 현금 사용 비율을 검색해 보니 작년 기사에서 아직도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머리로는 일본이 현금 사용이 많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 생활하던 습관이 아직 남아 몇 번이나 현금이 없어서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하필이면 저녁 약속이 있는 날 지갑에 현금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됐다. 왜 일본에서 현금을 안 가지고 다니느냐 할 법도 하지만 그때는 아직 현금을 쓰는 게 익숙지 않았고 지갑에 어느 정도 있겠지라고 신경을 쓰지 않아 버리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통장이나 은행 카드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의 체크카드 기능을 하는 게 없어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은행 카드와 신용카드가 별개의 개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은행에 갈 때 아니면 통장, 은행 카드도 깜빡하기 일 수였다.
나는 교통 카드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현금으로 약속 장소에 갈 버스비를 냈어야 했는데, 현금이 없으니 참으로 난감했다. 어쩌지 고민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고 싶지 않아서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해외에서도 사용 가능한 신용카드로 택시를 타고 150엔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천 엔을 지불하고 가게 됐다.
내가 무슨 부르주아도 아니고 일본에서 택시를 타다니!!!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택시비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이 일은 뼈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일본 생활 6년을 보낸 지금은 지갑에 항상 1~2만 엔은 갖고 다니고 있다. 이 얘기를 주변 한국인이 들으면 너무 현금 많이 갖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버스비 낼 현금이 없어서 택시 탄 일 외에도 현금만 결제되는 슈퍼에 갔는데 장을 다 보고 돈이 없어서 다시 물건을 돌려놨어야 한다던지, 식사를 다 마쳤는데 현금 결제밖에 안 되는 걸 알아버려서 핸드폰을 맡기고 돈을 찾아온다던지 하는 불상사들이 몇 번 있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비할 수 있는 금액을 들고 다니게 된 것이다.
물론 일본도 코로나 시대를 기점으로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일본 정부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자 결제도 활성화되고 무려 일본에서 애플리케이션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하는 등 여러 가지 결제 기능이 편리화되는 게 생활 속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후쿠오카에서는 맥도널드에서 조차 현금만 결제가 된다던지 하는 일이 흔했고 현금 결제만 가능한 식당들은 아직도 여기저기에 많다. 일본에 살며 만난 사람 중에 카드를 사용하는 게 불안해서 아예 신용카드를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들도 꽤 봤으며 지갑에 여유롭게 10만 엔 정도는 들고 다니는 사람도 봤다.
귀여워!!!
부끄럽지만 나는 일본에 살면서 외모나 성격에 관련된 칭찬을 많이 받아봤다. 내가 진짜로 이쁘거나 귀여워서가 아니라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작은 장점이라도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일본 사람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본에 살며 나는 좀 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건 확실하다.
흔히 한국인들은 칭찬에 인색하다는 말을 한다. 물론 한국 사람도 사바사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남들과 비교하여 남이나 자기 본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좀 더 익숙했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남들에게 지적도 많이 받으며 살았고,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었고, 꼭 내 얘기가 아니어도 타인을 흉보는 얘기들을 들으면 이해가 안 가는 때도 많았다.
나는 한국에 살 때도 비교적 남들에게 좋은 말이나 칭찬을 자주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대방에게 오버 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일본에 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칭찬의 말을 건네도 일본인들은 감사하다고 대답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나에게 농담조로 오버한다,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칭찬을 듣는 일이 굉장히 어색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나를 향한 칭찬의 말을 부정한 적도 있었다. 지금도 주변에 한국인들을 보면 칭찬을 안 하거나, 칭찬을 해도 싫어하거나 혹은 칭찬은 일본인의 다테마에 (가식, 겉으로 보이는 마음) 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일본 생활이 길어지며 나는 나를 향한 칭찬들에 대해 우선은 겸손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으려 하고 그게 혹시 다테마에일지라도 말은 말 그대로 감사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해 주고 서로가 기쁨을 나누는 대화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한국에 살 때는 약속이 있으면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도 흔했고, 회사가 늦게 끝나고 나서 마트를 가거나 화장품을 사러 가거나 시간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생활했었다.
일본에 오니 특별히 늦게까지 오픈하는 가게를 제외하고 저녁 7시, 8시면 닫는 슈퍼도 흔했고 가게들도 저녁에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번화가라 괜찮겠지 싶었던 곳들도 빨리 문을 닫는 곳들이 많았기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밤은 정말로 밤이었다. 어둡고 조용한 밤이 처음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항상 왜 이렇게 빨리 닫지 싶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지금은 한국에 종종 돌아갈 때 아직까지 올리브영이 열려 있다고?! 마트가 밤 12시까지 한다고?? 하며 불이 꺼지지 않는 한국의 밤을 볼 때 놀란다.
일하는 사람들 힘들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이제는 한국에서 살 때와 시간개념이 좀 달라져가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에 놀라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익숙해져 가는 과정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맞거나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많이 받아들이게 된 걸 보면 나도 일본 생활이 많이 익숙해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