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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귀 Sep 06. 2023

한국을 떠나고 애국자가 되었다

한국 사는 사람보다 더 한국 사는 사람 같던 시절

후쿠오카는 공항이 도심과 매우 가깝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면 후쿠오카의 중심지인 하카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는 외국인에게 너무나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공항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나는 집에서 공항까지 걸어서 간 적도 꽤 있었다. 공항은 도보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됐는데 워낙 평소에도 1시간 정도 거리는 잘 걸어 다녔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게다가 항상 최저가 비행기표를 구하다 보니 수화물이 없을 때도 있어서 짐을 굉장히 콤팩트하게 들고 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집에 강아지 보기 위해서 짧으면 1박 2일로 한국에 가기도 했고, 2박 3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 많으면 한 달에 두 번 한국에 가는 일도 있었다. 오죽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너 사실 일본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번은 한국행 비행기표를 최저가 수준인 왕복 7만 원 정도에 구매했는데, 밤늦은 시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대중교통수단이 끊겨 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집에는 가야 된다는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무려 택시비가 10만 원이 나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금은 웃음밖에 안 나오는 에피소드지만 그 당시의 내 상황이었기에 그런 일도 있었지 싶은 마음이 든다.






한국을 떠나니 한국이 너무 좋았다. 사람 마음은 정말 신기하다. 


한국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길거리 간식부터 감칠맛 폭발하는 매운 요리들이나 매일 먹는 평범한 반찬들까지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정스럽게 사람을 잘 챙기는 한국 사람들도 새삼스레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은 한국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도, 보고 싶은 영화를 빠르게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좋았다. 관광객 기분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놀러 다니기도 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한국을 만끽했다. 한 번씩 한국에 돌아갈 때마다 가슴이 충만해지도록 에너지 충전이 됐다. 


그럴 거면 한국에 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과 멀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한국이 좋아졌다는 말이 딱 맞았다. 사람과 사람도 그렇지만 뭐든지 관계에 거리가 생기면 좋은 점만 남고 싫은 점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일본 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1년 정도는 내가 자주 한국에 가는 만큼 가족과 친구들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일본에 왔다. 친한 친구들도 그렇고 오히려 한국에서 자주 못 보던 친구들도 일본에 여행 겸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일본에 살면서도 천천히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일본에 놀러 온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공항으로 떠나면 그때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항상 가족과 친구들이 타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시간에는 혼자 집 근처 나카강 다리에 가서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기를 바라봤다. 가족이나 친구가 저 비행기를 타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려댔다.


일본 생활을 할 때는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뼈저리게 이해하며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청승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과 친구들이 오면 항상 좁은 원룸에서 복작복작 같이 생활을 하는데, 계속 혼자이면 모를 기분을 함께 하다가 혼자가 되니 외로운 감정이 피어났던 것이다.


한 번은 바보같이 혼자라는 걸 망각하고 멘션 열쇠를 안 가지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너무 당연하게도 1층 공동 현관문이 잠겨버려서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나는 문이 잠겨 오도 가도 못하고 너무 당황해서 일단은 멘션 입구에서 계속 누군가가 집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때 드디어 여성분 한분이 멘션에 들어가길래 얼른 따라 들어가려고 했는데, 쓰레기 버리러 나온 내 꼴이 정말 처참했기 때문에 여성분이 깜짝 놀라 따라 들어오는 내가 못 들어오게 문을 당겨버리셨다.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두 사람. 나는 정말 오해시라고 저는 여기 9층에 사는데 열쇠를 깜빡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간신히 멘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도 모두 다 일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이고 나는 점점 한국에 자주 안 들어가게 되고 일본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직장 때문에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로 이사를 하면서 한국은 점점 자주 안 가게 됐고 그나마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에 가던 게 코로나 때는 무려 3년이나 한국에 가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는 햇수만 줄어들었을 뿐 일본에서 매일 한국요리만 먹으며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건 불변이다. 지금도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애국자의 마음으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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