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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 Dec 20. 2018

태국에서 30일 (4)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대화

여행 메이트이자 대화 메이트 PB가 떠났다.

여행 메이트는 생각지도 않았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싶은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 식당에서 갑자기 말을 트게 된 사람, 요가원에서 만난 사람, 이렇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사람 등등 정말 많은 여행자들이 스쳐 지나간다. 스쳐가는 사람이 인연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PB가 그랬다.



치앙마이 여행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 PB다. 요가를 하고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게 일상이라 소소한 주제부터 난해한 주제까지 정말이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되는,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대화로 치앙마이에 있으면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순간들이었다.



요가원에서 만난 PB는 31살 샌프란시스코 출신 미국인이다. (피넛버터를 심각하게 좋아하여 PB가 된 그) 회사를 그만두고 4개월째 여행 중인데, 곧 여행을 마치고 다시 어떤 일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여행 중에 간간히 일을 받아서 하기도 하더라. 졸업하자마자 컨설팅펌에서 몇 년을 일하고 테크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고 하니 똑똑한 듯하다.



PB의 특징은 투머치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약에'로 시작하는 가정을 한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모르겠다' 혹은 '그냥'이라는 답은 그의 사전에 없다. 내 안에서 어떠한 답이라도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냥'이라고 답하자니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해 굳이 굳이 답을 끄집어 내본다.



'만약에' 뿐만 아니라, 스무디 볼을 먹을 때도 5가지 스무디 볼 중에 왜 그걸 선택했는지 묻는 등, 정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그린스무디 볼을 시켰고, 정말 '그냥' 시켰는데, 어쨌거나 답을 해야 해서 찾은 답은, 그린스무디 볼 색이 가장 건강해 보였고, 음식에 초코가 들어가는 건 싫어서 초코는 제외했고, 마찬가지로 음식이 분홍색인 건 싫어 딸기 스무디도 제쳤다는 논리였다)


이게 바로 그린 스무디볼.



그가 떠나기 전, 핑강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만약에' 게임을 하기에 이른다..


만약에 세 도시에 집을 살 수 있으면 어디에 살 거야?
만약에 평생 세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으면 뭘 먹을 거야?
만약에 어디든 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떤 풍경을 보러 갈 거야?



이런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는 게 정말 쓸데없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현실을 고민하기도 여념 없는데,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내 두뇌를 써가며 답해야 하나라는 솔직한 생각이었다. 결국 반강제적으로 계속 답을 해가며 알았다. 나에게 이런 과정이 부족했다는 걸. 자연스럽지 않았기에 불편했다. 생각의 과정을 끝까지 견뎌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PB와 치앙마이에서 가장 좋아한 카페 @around 18 grams


일반적인 생각회로에서 벗어나게 해준 PB. 가정하고 답을 해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더라. 어느 정도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걸 알지만, 아예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사실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이다. 나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찾으며 '그냥'이 아니라 '이래서' 라는 나름의 생각정리도 하는 법을 짧게나마 익혔고, 이 부분을 취향찾기 프로젝트@치앙마이에 적용할 수 있었다. 



지금 PB는 타이페이행 비행기 안에 있다. 스쳐지나가지 않고 인연이 되어 여행 메이트이자 대화 메이트가 된 PB에게 감사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좋은 대화. 대화를 통해 얻는 영감. 이런 순간이 내가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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