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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수플레 Oct 31. 2024

가끔은 그런 날 4.

나의 특별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나는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


실패했기에 불행하고, 불행하기에 불쌍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또 살아졌다는 것이다.  소중하고 선물같은 경험이었다.


반면 나는 꼭 불행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약자를 보살피듯 그들은 나에게 간혹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실패할 것을 걱정해 주었다.

나는 그들 눈에 어린아이 같았다.


하지 마라, 조심해라, 이제는 그러지 말아라, 이제 아이만 보고 살아라, 너도 알지 않냐... 등등.

그러다 보면 나는 이제부터 실패와 우울의 카테고리에 고이 담겨 그들이 원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그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건 내 삶이거든.

내가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그렇게 또 살아지지 않더라.

나는 또 똑같이 반복하여 마음을 다 내어주고 그렇게 상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후회하더란 말이지. 그건 실패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

그렇게 자책하며 나는 또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내가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나는 이런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도 이제는 받아 들 수 있게 되었단 거다.

모든 것들을 비워내지는 못했지만 또 그렇게 겪어가며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바보 같이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굳이 고치고 싶진 않다.


내가 좋아하던 빙수가게였다.

가게에 들어가면 도마에 과일을 다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제법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산처럼 쌓인 과일을 보면 그것보단 이걸 어떻게 다 먹지? 란 걱정을 하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캠핑장과 가까워서 우리 가족은 이곳을 종종 들르곤 했다. 길을 건너 보이는 호수가 참 멋진 곳이다.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신작로를 건너려 하는데 저만치 혼자 가버리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다. 애들 아빠는 결국 돌아보며 뭐 하고 섰냐며 핀잔을 줬고, 그 후에도 내내 크게 싸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간격이 더욱 멀어졌기 때문이고 서럽고 외로운 생각에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를 곱씹어야 했다. 사실은 말이야. 나 그날... 저 신작로에 무작정 뛰어들고 싶었어. 그냥 이대로 내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단 말이지.

마음이 시리고 시린 그곳을 나는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빙수가게 갈래요?"

적당히 더운 아직은 초가을.

우리는 옛집 분위기가 물씬 나는 빙수가게에 마주 앉아 멋쩍은 듯 웃기도 하며 그렇게 배부르게 빙수를 나눠먹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이 장소만 오면 생각나는 아픔과 상처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이제는 내가 이렇게 편하게 빙수를 먹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빙수가 들어가니 가슴이 개운해지는 것은 그저 빙수 때문이었을까?

"이제 어디 갈까요?"

스마트폰을 부지런히 만지작 대던 그는 전망대를 가자고 했다.

습관은 참 무섭다. 어느 지점에 상대를 거슬리게 하고 그러한 상황은 곧이어 화로 발전되는 그런 상황들을 그 사람과 있어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화 잘내?"

나는 잠깐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라며 나에게 크게 화를 내는 그를 상상했다. 그럴 리 없잖아...

전망대를 가기 위 비탈진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달팽이처럼 동글동글 감긴 그 길은 꽤나 길어 보였다. 걷다 보니 제법 땀이 났다. 등을 살며시 밀어주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괜찮은지 힐끗힐끗 바라보며 살펴주는 시선도 느낄 있었다. 장난처럼 이런 곳에 올지 몰랐다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해도 그는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다가 야생 고양이를 만나면 쭈그려 앉아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그런 걸 만져? 하는 사람은 없다. 로 땅을 밟으며 산책하는 등산복 차림의 한 무리 사람들이 지나치고 또는 다정한 노부부를 만났으 헤드폰을 끼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학생도 스쳐가는 그러한 풍경이 왠지 모르게 가을햇살만큼 따스했다. 그렇게 올라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참을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다 보니 시간이 소중했고, 옆의 그가 특별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특별한 하루들이 시작되었다.

수백 번을 억울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이야기해도 토닥여 주는 그였다. 내가 하는 말들을 다 기억해 두었다가 꼭 해주는 사람이었고, 좋다고 말한 노래는 그의 차에서 흘러나왔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그는 아이들도 잘 이해했고, 나 역시 혼자 아이들을 보살피는 그가 신경이 쓰였다. 우리에게 하루는 일 년 같았다. 앞으로 만날 날들이 감사했고, 우리의 실패가 아픔보다는 안도가 되었다.

'우리는 참 운이 좋은 사람들이야..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그렇게 나는 또 빗장 없이 마음을 한껏 열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사랑은 누군가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왜냐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잖아.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야, 당신보다 경험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일 뿐이야...

또 실패할 수도 있겠지. 그게 두렵다고 모든 것들을 밀어내며 살지는 않을 거야...

나의 사랑은 스무 살 때나 마흔 살 때나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랑은 어른이 되지 않더라..


-미미수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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