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아래접시 Oct 31. 2023

우리 집 밑엔 마귀할멈이 산다 1

층간소음이야기 1

"경비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경비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인터폰의 다급한 부름에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 9시 이후로 소란스럽다는 아랫집의 항의를 경비실에서 대신해서 전달했다.

-그런데 저희 지금 다 누워있는데요. ㅇ무튼, 알겠습니다.

남편은 오후 출근이라 집에 없었고 집에는 아이들과 내가 있었다.

아들만 둘인 집이지만 첫째는 시크한 중학생이고 둘째는 또래보다 움직임이 적은 5학년이다. 애들은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 각각 7시, 8시가 돼서야 오기 때문에 6시 전에 퇴근하는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근 후에 잠깐 쉬다가 저녁 운동을 다녀오는 편이었다. 그날은 저녁 운동을 마치고 8시 반쯤 집에 오니 베트남 축구 친선경기가 있는 날이라 애들은 소파에, 바닥에 널브러져 경기 시청을 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먹이고 각자 방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쯤 울린 인터폰이었다. 남은 반찬에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인터폰 부름에 응답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랫집과 층간소음 문제는 이사 온 첫날부터 시작됐다. 이삿날 저녁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도 같이 먹을 겸 들른 것이 시작이었다. 인터폰을 통해 전해진 짜증스럽고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네. 네. 대답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아랫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키는 나보다 좀 작았지만(나도 키가 작은 편이다) 후까시(?)를 넣어서 한 껏 부풀린 정수리가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겨드랑이 아래에 끼고 있는 강아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눈에 아랫집 아주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로 모른 척하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층을 누를 때까지 지켜보던 아줌마가 한 소리 했다.

"아 우리 윗집이네."

짧은 말 한마디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겨우 5층까지 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 공기가 진공상태로 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 이후로 더 자주 만나졌다.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는 더 이상한 분위기가 되었다. 당시엔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려서 앞으로 아랫집에 끼칠 피해를 생각하면 서로 좋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잘 지내려 했다. 가을이면 시댁에서 보내주신 감 한 박스를 드리기도 하고 길에서 만나면 인사도 깎듯이 하고 어쩌다가 만나서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신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짐이라도 나눠서 들어 드렸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꾸짖고 나무라는 아랫집 아주머니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상대였다.

"자꾸 이런 거 주지 말고 조심 좀 해요. 나도 애들 다 키워봐서 아는데 그 집은 너무 심해."

하이톤의 낭창한 말투로 할 말 다하는 아랫집 아줌마는 한마디로 쎈 캐릭터였다.

이후로 우리 집 거실 바닥은 층간소음 매트로 채워지고 모자란 부분은 추가 구매해서 빈 바닥을 메웠다. 방마다 이불을 깔고 되도록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하원해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해가 지도록 놀이터에서 놀리고 저녁도 외식을 하거나 지인들 집에서 해결했다. 주말은 무조건 외출이었다. 하루종일 놀리고 굴리고 집에 오면 씻고 8시 전에 잠이 들도록 생활했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한눈에 보이고 평화로운 중앙광장이 잘 보이는 집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도 집 안 구석까지 해가 들어오는 따뜻한 집이라 홀리듯 매매했는데 이 집은 '즐거운 나의 집'이 되질 못했다.  불편한 상황을 못 견뎌하고 싸움도 잘 못하는 나는 어찌 됐건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애썼지만 한번 시작한 아랫집 아주머니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주말 오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