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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26. 2024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1)

‘권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2020년 코로나 펜더믹 시작과 함께 우리 학교 관리자가 바뀌었다. 그전 교장님은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고, 행복한 학교가 된다’는 모토를 지니셨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그 덕에 나는 시대에 맞지 않게 1년 동안 교직원 워크숍을 네 번 추진하였고-보통 한 번에서 두 번, 요즘은 더 줄어드는 추세다-, 그중 한 번은 춘천과 양구를 거친 1박 2일 연수였다. 자발적인 참여율이 높았고, 주최자만 아니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임이었다. 아. 2박 3일 부장연수도 여름과 겨울 꼬박 다녔구나. 워크숍을 준비하고 실시하는 일은 힘에 부쳤지만, 존경할 만한 상사(?)를 모신다는 건 그 고행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일로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2019년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을 하셨다.


교장이 바뀌고 코로나19 펜더믹이 터지며 학교는 혼란에 휩싸였다.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개학과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순차적으로 등교하였고, 마스크와 소독,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었다. 신입생이 첫 오프라인 등교를 하는 날의 짠함이나 마스크 낀 담임반 아이들의 눈을 직접 마주쳤을 때의 낯섦 같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온오프라인 수업의 병행이 익숙해져 갈 무렵 무언지 모를 불안감이 학교를 애워쌓다.


그의 모토는 단순했다. ‘존중’과 ‘배려.‘ 그러나 그가 일처리 하는 방식은 그의 모토와는 정반대였다. 학교운영위원회나 부장 회의가 시작되면 소리의 9할은 그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소통과 합의를 통해 결정된 일이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이 바뀌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골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체육과 출신답게 엄청난 덩치와 험상굳은 진한 경상도 말투로 젊을 때부터 골프를 배워야 한다, 내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겠다, 때로는 협박에 가까운 권유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하였다.


코로나 첫 해가 마무리 되는 시기에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시작은 본관동 뒤편에 스포츠 클럽 활동 중 탁구 수업이 진행되던 허름한 가건물부터였다. 그곳에 인공 잔디를 깔고, 과녁대를 세우고, 골프채 등을 사 넣었다. 시설 관리 담당 선생님께 나무로 짠 캐비닛을 여러 개 만들라 했다. 총 일곱에서 여덣 개의 사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스윙 연습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골프장을 하나 뚝딱 만들었다. 어디선가 스크린 골프가 가능한 기기를 후원받아 구석에 큰 공간을 추가로 마련했다. 개관식도 하고 골프 강사를 섭외해 교사 연수를 진행하였다. 연수 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그 일을 억지로 처리해야 했다. 일은 하되 연수는 빠졌다. 체육과에는 골프수업을 하라 지시받고 교육과정을 뜯어고쳤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학교 구성원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하면 인부들이 공사장비를 싣고 와 작업을 하는 식이었다.


스케일은 커져갔다. 하루하루 공사의 연속이었다. 체육관 2층에 있던 태권도부 연습실은 1층 체육부로 이동하였다. 체육부는? 당시 사용하고 있지 않던 수학교과실로 옮겼다. 그리고 태권도부 연습실이 있던 곳은 스크린 사격장이 되었다. 본디 본관에 두 학년, 별관에 한 학년이 모여 있었는데, 세 학년 모두 본관으로 옮기고 별관을 거의 폐쇄하다시피 하였다. 본관 현관의 문구도 바꿨다. 그 업무는 나에게 떨어졌고 문구도 디자인도 대충 훑어보며 결재하던 그는 실제 문구 간판이 설치될 때 딴지를 걸었다. 첫 딴지는 “글자가 너무 크다”였고 둘째는 설치 과정에서 업체에게 청소까지 요구한 것이다. 그것도 시원시원한 경남 사투리 반말로. 한 번은 업무를 보던 중에 시설 관리 주무관님께 연락을 받았다. 본관 2층에 있던 영어교과실의 컴퓨터와 수업자료를 빼라고. 깜짝 놀란 나는 2층으로 가보았고 그곳에는 여러 인부들이 영어교과실을 철거하고 있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영어교과실은 반으로 나뉘어 학년부와 교사 휴게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하이라이트에는 거대한 스크린 골프장이 있었다. 원래 도서관이 있던 곳에. 당시 우리 학교 도서관은 2층 체육관 바로 아래 있었다. 체육관에서 농구나 배구 수업이 이루어지면 멀리서 쿵쿵거리는 아련한 소음이 도서관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때까지 학생과 교사 모두 큰 불만 없었고, 체육과 국어 수업, 도서관 활동은 원활히 이루어졌다. 그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교실 네 개 이상의 크기를 가진 도서관을 별관으로 보내겠다 결정하였다. 50년이 넘은 건물 안전 진단에서 벽을 틀 수 없다는 결과를 받고는, 본관 1층에 교실 세 개 크기로 있던 본교무실 자리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럼 본교무실은? 본관 2층에 교실 두 개 크기의 세미나실로 옮기게 되었다. 그럼 애초에 도서관이 있던 공간은? 그렇다. 그곳에 거대한 스크린 골프장이 생겼다. 본관 뒤에 만들어진 작은 골프장이 아니었다. 기억이 맞다면 네 군데 정도 크게 나뉘어 공간마다 엄청난 스크린이 있고, 3D 그래픽으로 현실감 넘치게 공을 칠 수 있었다. 그 시스템을 실행하는 비밀번호는 당시 그 만이 알고 있었다. 도서관의 소음? 명목이었다. 모두가 말하지 않았지만 알았다. 그의 진짜 목적을. 굳이 교무실을 작게 만들고, 도서관 크기를 줄이고, 겨울방학 직전에 교무실의 교직원들은 개인 짐들과 교무실 자료들을 2층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물론 그가 지원하겠다 약속한 인부들은 실제로는 오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이 시늉만 하는 논의 과정, 또는 단순한 통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학생과 학부모도 알고 있었다. 골프에 대한 그의 사랑을. 어떤 학생은 체육시간에 왜 골프만 해야 하는지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체육 수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나도 ‘실제학습시간(Academic Learning Time, ALT)’이란 중요한 개념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체육 시간에 학생들이 실제로 적절한 수준의 운동과제를 실시하며 소비하는 시간을 뜻한다. 예를 들어, 체육 교구가 부족하여 학생들이 돌아가며 수업을 한다면, 개별 학생이 그 교구를 체험하는 시간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실제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수업을 짜야한다. 또한 공간의 문제도 중요한데, 운동장에서 다양한 교구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축구, 농구, 야구, 심지어 골프 수업도 진행할 수 있다. 골프장에서는 골프 외에 다른 운동을 할 수는 없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일이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학교 행정실에서도 교육청이나 구청에서도 예산 지원, 계약, 공사 발주 등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학생 체육 교육 활동을 목적으로 한 일이니 서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 뜬소문이 여럿 있었지만, 그런 것의 진실을 파해치고자 노력할 만큼의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그가 휘두르는 권한의 힘 아래 숨 죽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전에 명예퇴직한 교장님께 들은 말이 있었다. “중등학교에서 교장은 하늘이다. 교장과 교감의 권한은 하늘과 땅 차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교육활동을 목적으로 한다면 교장은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실은 점심 식사 후에 일부 권력자만이 즐기는 놀이터를 만드는 일일지라도.


그즈음 나는 권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교육학을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이 교육행정, 그중에서도 법과 예산 부분이었는데. 법적인 해석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어떤 집단의 지도자가 가지는 ‘권한’이란, 개인이 사회에서 누려야 하는 ‘권리’와는 사뭇 다르다. 개인의 권리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내가 욕망하는 행위나 말을 실행하고 내뱉는 것이다. 반면 권한이란 단순히 권력자가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아니며, 오히려 그 집단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지도자가 결정과 선택을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만큼의 높은 임금과 지위를 부여한 게 아닐까.


집단의 장을 우리는 때로 대표자, 대리인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representative. present가 직접적으로 나타낸다는 의미라면 ‘다시’란 의미를 가진 접두어 re-가 붙은 represent는 한 번 걸러서 나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representative(대표자, 대리인)는 그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의 평균적 성향, 태도, 인식을 표상하는 자를 말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대표자는 그 집단의 구성원이 어떤 생각과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며 파악해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 집단의 장이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본인의 욕망과 의지를 과하게 투영한다면 그것은 권한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월권이지 않을까. 법적으로 어떨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난 후, 최근 그가 퇴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수준의 권력자도 무사히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코웃음이 났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짜내어 아주 가끔 회의 자리에서 그의 면전에 입바른 소리를 하였는데, 내 용기(courage)의 용량은 그것밖에 안 되었다. 그의 권한 행위를 막거나 고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꽤 고통받았다. 아.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그가 골프에 푹 빠져 있던 덕에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오히려 일하기 편했다는 선생님들도 있다.


세상이 흉흉하다. 권력자는 권한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휘두르며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권한이 없는 자는 마치 권력자인양 없는 권한을 휘두른다.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너무나도 미운 사람이 생긴다. 때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미움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기도 한다. 정의롭다는 건, 적어도 정의로워지고 싶다는 건 그래서 상당한 용기도 필요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큰 통찰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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