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만능주의 (1)
우리나라 교육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뭔가 날카로운 문제제기와 원인 분석,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해결책을 가지고 덤벼들 만큼 깊이가 있지도, 공부를 많이 하지도, 많이 알지도 못하지만. 고작 중등교육 안에서 영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훈련을 받은 정도다. 수많은 책과 문헌을 섭렵하거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저 10여 년간 학력 수준이 낮은 지역의 중학교 세 곳을 전전했을 뿐이다. 그래도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일들을 겪거나 접하면서 좁고 미약한 문제의식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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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주제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람은 교육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장하며 직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겪어 보았다. 고등교육기관을 경험한 이도 굉장히 많다. 성인이 된 후, 평생교육기관에 가거나 사교육을 접하기도 한다. 자녀를 둔 경우에는 학부모로서 학교를 겪는다. 혹은 나처럼 공교육 또는 사교육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폭력, 아동학대, 입시 등등 언론에서도 자주 그리고 자극적으로 다룬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교육전문가다. 때로는 수능에 시비를 걸기도, 때로는 학종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자신의 교육관이 옳다 피력한다.
하지만 그 거대한 틈바구니 속에서 나의 작은 목소리를 말할 권리는 있다 여긴다. 14년 가까이 학교에 머무르며 나름 맡겨진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했다. 그러니 떠들 지분은 좀 있지 않을까. 거기다 내가 뭐라 지껄인들, 그게 얼마나 크게 들릴까. 다만 너무 거창한 주제를 얄팍하게 핥아 나갈 내 모습이 뚜렷이 그려지니 낯이 화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안에 싹튼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새싹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교육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다. 실제로 그렇게 믿는 이도 많다 여긴다. 하지만 믿지 않으며 이를 이용하는 이도 많다. 공교육과 학교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도 사실은 교육을 통해 무언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믿음 아래 있다. 아마도 ‘교육’이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매력적인 해결 방안이 될 본성을 지닌 놈으로 보여서. 또 회초리를 들고 비판을 가하기에도 딱 좋은 놈이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에도 교육, 경제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도 교육, 다양한 사회 문제와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교육, 세상을 변혁하는 데도 교육, 국제 시민을 기르는 데도 교육, 이제는 하다못해 인공지능도 접목해서 IT강국에서 AI강국으로 만들어보자 팔 걷고 나서자고 교육하려 한다.
이 문제의식을 와닿게 할 짧은 표현으로 한때는 ’교육만능주의‘라는 말을 떠올렸다. ‘교육’을 통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믿음‘ 이란 의미로써 적합하다 여겼다. 구글링 하니 이 용어를 사용한 국내 도서 한 권과 기사 두 개쯤이 검색되었다. 책의 내용이 내 생각과 맞닿아 있거나 기사에서 작심하고 이 용어를 강조하는 듯하진 않았다. 교육만능주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어 단어 ‘Educationism‘도 여러 문헌에서 쓰이고 있었다. 다만 Wiktionary에 따르면, ‘고등교육을 받지 않는 이들에 대란 차별’이라 정의하여 이 또한 완전히 일치하는 용어는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에듀테크(Edutech, education과 technology를 합친 신조어)라는 용어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뭐래도 코로나 펜더믹 이후 교육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다. 이런 식의 조어법을 적용하여 떠올린 두 단어가 Edupanacea와 Eduplacebo다. panacea는 ‘만병통치약’이란 의미다. 즉 Edupanacea는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과 같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용어는 오히려 교육만능주의를 부추기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placebo는 우리말로 ‘위약’을 뜻한다. 유명한 심리학적 개념인 플라시보 효과의 그 플라시보다. 플라시보 효과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약을 복용시켜 환자가 치료받는다 믿게 만들면 실제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표현과 맞닿아있다.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실제로 사회와 학교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듯했다. 교육을 요렇게 조렇게 지지고 볶으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위약으로 인한 심리적 효과에 중독되어 계속 복용이 이어지듯 교육만능주의라는 믿음에 중독되어 이런 실수를 계속 저지르는 건 아닌지.
과연 이런 용어가 필요할 만큼 우리나라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과한 믿음, 집착 같은 것이 존재할까?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길래 내 눈에 그런 점이 포착된 것일까? 만약 이 같은 현상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나 역시 교육의 틀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으로서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과연 바꿀 수는 있을까?
고민이 커지면 커질수록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도 부풀어 오른다. 문헌을 뒤지고, 이것저것 기록하고 메모하고 있지만, 매 순간 나는 이 모든 수고가 헛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미리 후회를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이런 글이라도 올리는 것은 아닌지.